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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10417m: 하나님의 딜레마(요 19:30) 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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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11년 4월 17일 주일낮예배/종려주일<br>
본문: 요 19:30<br>
제목: 하나님의 딜레마</p>
<!-- paragraph:p0002 -->
<p>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
저는 독일에서 만 10년을 살았습니다. 중부지방인 본에서 4년을, 남부 뮌헨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뮌헨에서 살 때는 시내에서 살지 않고 약 24km 떨어진 &lt;하임하우젠&gt;이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lt;다카우&gt;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저의 큰 아이 예리가 다카우 부인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카우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왜냐면 히틀러 때 거기에 강제 수용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독일의 다카우입니다. 히틀러 때 다카우에서 무려 20만이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시신을 화장할 때 나오는 기름을 모아 비누를 만들어 군에 보급을 했습니다. 금이빨을 뽑아 금괴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그대로 지금도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다카우라고 하면 부끄러워합니다. 치부로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다카우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유럽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참 싫어합니다. 얼마나 싫어하면 뱀하고는 같이 잘 수 있어도 유대인하고는 못 잤다고 했습니다. 히틀러는 그런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반유대 감정을 이용해 600만을 죽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인구가 400만이 조금 넘습니다. 히틀러는 왜 그랬을까요? 사실 히틀러가 600만을 죽인 게 아니라, 유럽 사람이 다 힘을 모은 겁니다. 다 공범들입니다. 유럽인들이 왜 유대인들을 그렇게 미워했을까요? 믿거나 말거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자서전인 &lt;나의 투쟁&gt;(Mein Kampf)를 보면,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얘기하며 유대인들을 성토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진정한 주범은 누구일까요? 히틀러를 비롯해 유럽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일까요? 아니면 주님을 십자가형에 선고한 빌라도일까요? 아니면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일까요? 아니면 실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로마 군인들일까요? 누가 십자가의 진정한 주범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열거한 사람들 중에 있습니까? </p>
<!-- paragraph:p0005 -->
<p>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님을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5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기서 기약대로는 하나님의 각본대로라는 뜻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신의 계획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다셨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계획이셨는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요한복음 19장 28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이게 말이 됩니까?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기에 목마르다 하신 게 아니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그랬던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써 주신 대사대로, 하나님의 각본대로 내가 목마르다고 한 겁니다. 주님이 오전 9시에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은 후 오후 3시에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목이 말랐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각본대로 목마르다고 한 겁니다. 이렇게 정밀하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6 -->
<p>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여러분, 이 대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통 사람이 죽을 때 죽어야 고개가 떨어집니까? 아니면 고개가 떨어지고 죽습니까? 죽어야 고개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은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계획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며 고통을 받을 대로 다 받고 진이 다 빠져 고개를 숙이니까 하나님이 영혼을 데려가셨다는 겁니다. 목마르다는 비명 한 마디조차도 하나님의 각본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십자가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 사건의 진정한 주범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7 -->
<p>‘다 이루었다’는 최후 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겁니까? 가장 비참한 형에 처한 분이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게 어울리는 말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의 각본을 다 이루시고 인간 구원의 프로젝트를 다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 오셨다가 가룟 유다가 배신하는 바람에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달렸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실패한 죽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이루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선언은 대단히 장엄한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그럼 대체 십자가가 무엇인데 그것으로 인간 구속의 사역을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고 계십니까? 이 부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님이 달려 돌아가셨기에 기독교의 상징이 되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표상이 된 것이지 십자가는 끔찍한 형틀입니다. 인간이 고안해낸 사형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형대였습니다. 십자가 형틀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빨리 죽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십자가가 가장 무서운 게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주 조금씩 죽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24시간동안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6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뇌물을 써서 빨리 죽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창에 옆구리를 한 번 찔리셨기에 빨리 운명하신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가장 비인간적이고 처절한 형벌입니다. 저는 늘 그런 의문이 있었습니다. 대체 왜 하나님이 인간 구원의 방법으로 십자가를 택하셨을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왜 가장 고약한 십자가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을까? 십자가는 너무도 엽기적이지 않습니까? 좀 더 품위 있고 우아한 방법을 택하실 수도 있을 텐데 왜 십자가를 택하셨을까요? 베드로전서 1장 12절을 보면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구절의 원어적인 의미는 십자가의 방법이 너무도 신비하고 오묘해서 천사들조차도 신기해 한다는 말입니다. 천사들도 납득이 안 되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를 원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겁니다.</p>
<!-- paragraph:p0009 -->
<p>그럼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인지, 하나님은 왜 우리를 굳이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은 우선 공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이 공의라는 속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 그만큼 상을 주시고,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악을 범한만큼 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죄를 짓거나 잘못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 주셔야 하고, 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 상을 주셔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범했는데도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했는데도 상을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p>
<!-- paragraph:p0010 -->
<p>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 전에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원죄를 쓰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불가항력적으로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니까 원죄 때문에 죄인이기도 하고 자범죄 때문에 죄인이기도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인류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p>
<!-- paragraph:p0011 -->
<p>그런데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사랑도 있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공의를 발휘하자니 사랑에 저촉이 되고, 무조건 용서하자니 공의에 저촉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제3의 속성이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그 지혜에서 착상된 게 십자가입니다. 서로 대립되는 사랑과 공의를 절묘하게 관철시킨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주님 한 분께 우리의 모든 죄를 지우고 심판하신 겁니다. 실제 하나님은 주님을 버렸고 저주했고 징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죄를 심판하셨고, 주님 한 분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이 성취된 것입니다. 주님을 응징하고 심판하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신 겁니다. 수직적인 하나님의 공의와 수평적인 사랑의 교차점이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 인간 구원의 용의주도한 성취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p>
<!-- paragraph:p0012 -->
<p>구약시대 때는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대신 죽을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한 분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으로 어떻게 전 인류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전 인류의 죄를 다 사하셨다는 것입니까? 주님의 피가 보혈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전무후무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피는 아담의 죄로 얼룩져있지만 주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 주님은 전 인류와 우주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존재인 주님의 피가 어떻게 인류의 죄를 사할 수 없다는 것이냐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관점입니다. 보혈의 의미를 깊이 새기십시다. 주님의 피는 값진 피입니다. 부활이 바로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볼 때 주님이 죽음으로써 내 죄를 다 사하시고도 남았구나는 깨닫는 겁니다. 주님의 피가 전 인류의 죄를 갚는 것만 된다면 부활은 없습니다. 주님의 피는 전 인류의 죄를 사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부활입니다. </p>
<!-- paragraph:p0013 -->
<p>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의주도한 인간 구속의 플랜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br>
<br></p>
<!-- paragraph:p0014 -->
<p><!-- paragraph:p0015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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