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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4월 23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7<br>본문: 고후 4:16-5:7</p>
<!-- paragraph:p0002 -->
<p>[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p>
<!-- paragraph:p0003 -->
<p>지난 주에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를 상고했습니다. 우리는 볼품도 없고 쉽게 깨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 담긴 보배 때문에 질그릇인 우리가 값진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담긴 보배는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편지, 향기 등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오늘 본문 상반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기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낙심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첫째,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지기에 낙심할 수 없습니다. 질그릇은 소모품입니다. 시간이 가면 낡고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후패”라고 했습니다. 쓸모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육신은 질그릇이어서 후패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 곧 영혼은 갈수록 새로워집니다. 왜냐면 우리 안에 보배 곧 성령, 복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배 때문에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세월과는 상관없이 날로 새로워집니다.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기지 않아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핍박을 받아도 낙심할 수 없습니다.</p>
<!-- paragraph:p0006 -->
<p>둘째, 잠시 받는 환난이 장차 우리가 누릴 큰 영광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도 낙심할 수 없습니다. 17절입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서 환난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 환난은 잠시 당하는 환난이고, 지극히 가벼운 환난입니다. 아무리 오래 당하는 환난도 잠시 당하는 환난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환난도 가벼운 환난입니다. 왜냐면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하고, 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을 겪어도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엄살은 심합니다. 우리는 순발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그 즉시로 장차 누릴 영광과 지금의 고난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하는 환난이 전부가 아닙니다. </p>
<!-- paragraph:p0007 -->
<p>셋째,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질그릇 안에 보배가 없는 사람은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잠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고 삽니다. 이 땅에서 사는 시간과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당하는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넷째, 우리의 영생을 성령으로 보증해 주셨기에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5장 5절입니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질그릇에 담긴 보배 목록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하나님이 내게 영생을 주시고, 성령을 내 안에 계시게 함으로써, 성령이 영생을 얻은 나를 주님 오실 때까지 관리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리적 용어로는 “견인”입니다. 견인차가 고장난 차를 견인해 가듯이 성령이 나를 견인해서 천국까지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의 담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나를 관리하고 계시구나!’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영생을 얻고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자들도 순간적으로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에 빠져 있을 수는 없고, 제 정신을 차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성령을 가진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09 -->
<p>마지막으로 그 안에 보배를 가진 자들은 믿음으로 행하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기에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마처럼 보아야만 믿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봐야만 믿으면 매사에 우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매사를 다 보여주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써 낙심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보배를 가진 사람들은 봐야만 믿겠다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바칩니다. 5장 7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진 자들은 믿음 때문에 보지 못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p>
<!-- paragraph:p0010 -->
<p>비록 질그릇이지만 낙심하지 않고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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