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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11년 4월 10일 주일낮예배/사순절 다섯째주일<br>
본문: 눅 23:39-43<br>
제목: 삶과 죽음의 영원한 분수령</p>
<!-- paragraph:p0002 -->
<p>[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형장은 골고다입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십자가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외롭지 않게 주님 좌우에는 다른 십자가도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두 강도가 못 박혔습니다. 외경 니고데모복음 곧 빌라도행전이라는 곳에 보면 이 두 강도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가까운 친지여서 어릴 때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늘 못된 짓만 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번엔 살인강도 혐의로 잡혀 십자가형에 처형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엔 죄수가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갔습니다. 이 두 강도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는 동안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주님까지 욕하며 조롱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5장 32절도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하고, 오늘 본문 39절도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주님을 비웃었습니다. </p>
<!-- paragraph:p0004 -->
<p>그런데 바로 이 극적인 순간에 희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욕하고 소리지르던 한쪽 강도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겁니다. 42절입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의 응답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평행선상의 두 강도가 하나는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회개와 기도를 통해 천국에 가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조롱하고 비웃다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구원과 저주의 영원한 운명의 기로에 주님의 십자가가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기막힌 상징이요 계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야말로 모든 인생들의 천국행과 지옥행을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영원한 구원과 저주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p>
<!-- paragraph:p0005 -->
<p>이 세상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천국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십자가를 비웃고 조롱하다가 지옥갈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을 보면 주님의 십자가를 노아 홍수에 비유합니다. 기막힌 비유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본래 목적이 심판용이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을 싹쓸이하기 위한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홍수가 당시 방주에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에게는 방주를 물에 띄워주는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요 심판이었지만, 노아의 식구에겐 구원의 수단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믿고 십자가 앞으로 나오면 살지만, 십자가를 배척하면 그 십자가로 인해 멸망당한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6 -->
<p>오늘 본문의 강도는 철저히 마이너스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좀 전까지만 해도 주님을 욕하고 조롱하다가 마지막에 주님께 청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그는 주님과 낙원에 이르게 됩니다. 십자가상에서 천국을 보장받은 겁니다. 우리도 이 강도를 부러워합니다. 가장 실리적이고 경제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괜히 예수를 미리 믿어서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못하고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의 생활에 비하면 이 강도는 자기 멋대로 살다가 숨넘어가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를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숨넘어가기 직전에 천국 간 것은 다행이나, 그의 구원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천국에 가지만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은혜로 가지만 거기 가서 누릴 영광은 이 땅에서의 삶의 내용을 정산해서 보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대가가 천국 가서 누릴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도처럼 구원 받으면 참으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작 예수를 믿은 것을 억울해 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p>
<!-- paragraph:p0007 -->
<p>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 편 강도가 어떻게 해서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회개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체 십자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좀 전까지만 해도 세상과 주님을 조롱하던 사람이 숨넘어가기 직전에 회개했다는 말입니까? 수수께끼입니다. 그가 다른 한 편 강도보다 착했기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이 강도는 회개했는데, 저편의 강도는 회개하지 못했을까요? 같은 마을에서 같은 환경에서 같은 나쁜 짓을 하며 살아왔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선택과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떠나서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강도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마지막 순간에 주님이 서둘러 그를 회개시켜 그 영혼을 챙겨 천국에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더 착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쪽 강도보다 종교심이 풍부해서가 아닙니다. 창세 전에 이미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p>
<!-- paragraph:p0008 -->
<p>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강도만이 아니라 우리도 같은 케이스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고, 앞으로 천국가게 되었습니까? 회개해서입니까? 믿었기 때문입니까? 이것은 초급반 수준입니다. 불신자 전도할 때는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믿으며, 회개를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불신자보다 더 착해서 예수를 믿게 된 겁니까? 우리의 심성이 다른 이보다 더 여려서 회개하게 된 겁니까? 우리는 주님의 다른 편에 달린 강도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어서, 회개해서 구원받은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하지 못하는 회개를 했고, 믿음이 생긴 겁니다. 믿어서 구원 얻은 게 아니라, 구원 얻었기에 믿게 된 겁니다. 회개해서 천국 간 게 아니라 천국 가기 때문에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선포하는 게 저의 사명입니다. 다른 이는 구원 받기 위해 믿으라고 가르치지만, 저는 믿어서가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믿는다고 가르칩니다. </p>
<!-- paragraph:p0009 -->
<p>이 회개한 강도와 반대 케이스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예수를 잘 믿다가 결국 믿음에 실패해서 버림을 받은 겁니까? 아닙니다. 처음부터 가룟 유다는 가라지였습니다. 그런데 알곡 사이에 있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처음부터 알곡과 가라지입니다. 양과 염소는 처음부터 양과 염소입니다. 양이 타락한다고 염소 되지 않습니다. 알곡이 못된 짓 한다고 가라지 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아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녀였으나 타락해서 버림 받은 케이스가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어둠의 자식이었으나 자녀들 사이에 있었던 겁니다. </p>
<!-- paragraph:p0010 -->
<p>여러분, 예수님의 한 편 강도는 주일성수 제대로 한 적 없고, 헌금 한 번 한 적 없고, 한 게 있다면 강도질 밖에 없지만, 택함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극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열심히 믿어서, 회개해서가 아닙니다.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강제로 다 끌려나와 있는 겁니다. 성령께서 강제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억지로 이렇게라도 관리하시는 중입니다. 우리가 다른 편 강도와 나은 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게 옳습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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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aragraph:p001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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