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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심히 교만하도다(사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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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심히 교만하도다</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사 16:6-9</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모압은 결국 선지자의 충고와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분부를 받들어 그들이 살 수 있는 선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지만 모압은 교만과 거만, 분노와 허세까지 부려가며 선지자의 그 예언을 모욕했습니다(6절). &lt;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gt;(잠 16:18). 그래서 하나님이 &lt;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할&gt;(7절) 것이라고 하셨고, &lt;슬퍼하며 심히 근심&gt;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p>
<!-- paragraph:p0005 -->
<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십마의 포도나무</p>
<!-- paragraph:p0007 -->
<p class="p1">&lt;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았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gt;(8절).</p>
<!-- paragraph:p0008 -->
<p class="p1">모압은 비옥한 밭과 포도원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디에나 최상급의 포도나무들이 심겨져 매 해 풍성한 수확을 보장했습니다. 가지들이 뻗어 갓 지파의 성읍인 야셀까지 미쳤고, 그 무성한 잎들이 산기슭을 다 덮고도 모자라 광야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lt;십마의 포도나무&gt;가 깊은 시름에 잠겨 마를 것이라는 겁니다. &lt;열국의 주권자&gt;라는 적국의 군사들이 닥쳐 모조리 유린하고 폐허로 만들어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이나 운명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 조건과 환경까지도 친히 관장하시고 간섭하시며 우리 삶에 깊이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한 순간일 뿐입니다. 아무리 명품 포도원인 &lt;십마의 포도나무&gt;라 해도 하루아침에 말라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폐허가 될 수도 있고, 또 아무리 버려진 황무지라 해도 한 순간 비옥하고 최상급인 포도원으로 거듭날 수도 있습니다. 모압이 자랑하던 십마의 포도원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야셀의 울음</p>
<!-- paragraph:p0011 -->
<p class="p1">&lt;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gt;(9절).</p>
<!-- paragraph:p0012 -->
<p class="p1">이것은 모압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안타까움과 연민을 전하는 대목입니다. &lt;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라&gt;고 합니다. 11절에서는 &lt;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리라&gt;고도 합니다. 수금을 탈 때 그 줄들의 떨림같이 내적인 깊은 떨림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선지자의 마음이고 세상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비애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lt;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gt;(마 23:37). 믿는 자들은 세상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합니다. 멸망당하는 자들에 대한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이야말로 세상을 위한 중보자들이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자 개인이란 한 사회 속에 함몰된 존재가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책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남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시고 더 많이 아파하십시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