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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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국적으로 방사능 비가 내렸습니다. 정부는 연일 <괜찮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못 믿겠다>고 했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비를 맞아도 되느냐?>는 한 의원의 질의에 국무총리가 <네!>라고 답변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당신이나 많이많이 맞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했습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까지 나서서 <극미량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도 국민들은 <잔 펀치>가 오히려 더 무섭다며 빗물 한 방울 튀기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여 그날은 서울 시내가 종일 한산했다는 보도입니다. 중요한 약속까지도 뒤로 미루는가 하면 전국 100여 개 학교가 휴교나 단축수업까지 하며 모두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막 개막하여 열광하던 프로야구 조차도 4경기가 모두 취소되고, 충남에서는 소년체전 야외경기가 모두 무산됐고, 서울 시내 일부 유치원은 <방사능 비가 내리는데 왜 휴원하지 않느냐?>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결국은 아이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헤프닝도 벌였습니다. 그날 서울 시내 우산 판매량이 여느 비오던 날에 비해 9배나 더 많았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의 방사능 경계심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우산이나 비옷으로 막고 외출을 자제하고 휴교로 피했다지만 땅에 재배하는 각종 채소들과 노지 작물들은 어떡합니까? 우리 교회 웰빙촌만 해도 밭장로님이 뿌린 청상추, 적상추, 청경채, 쑥갓 등이 벌써 다투어 움을 틔우고 있고, 지난 겨울을 꿋꿋이 견딘 부추도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데 그렇다고 뛰어가 우산을 씌울 수도 없고 이번 방사능 비에 무방비로 노출됐으니 어쩌지요? 또 어제는 방사능 비를 흠뻑 맞은 밭에 거름을 뿌리고 땅을 뒤집어 감자까지 심었습니다. 사실 저는 비오던 날 새벽 이미 기도회를 위해 집을 나서다 잠시나마 예의 그 비를 맞았고, 낮에도 심방을 하며 더러 맞았는데 찬 비가 얼굴에 떨어지는 순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발생한 방사능 사고의 실체가 드디어 내 피부에까지 와 닿았다는 묘한 느낌과 함께 25년 전 체르노빌의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마침 올해는, 아니 이 <잔인한 달> 4월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제25주기(26일)가 되는 달입니다. 25년전 구소련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는 단순히 그들만의 사고가 아닌 인류사에 기록된 대재앙이었습니다. 구소련의 붕괴도 결국은 그 사건이 가속화시켰다는 분석도 공감이 갑니다. 다행히 체르노빌 이후 지난 25년간은 이 지구촌에 그런 노심용융과 방사능 유출 같은 중대사고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체르노빌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각국이 그만큼 안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그게 곧 체르노빌과 같은 대재앙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뜻일까요? 체르노빌은 이제 IAEA 보고서 속에나 존재하는 전설의 사고가 됐다는 뜻일까요? 체르노빌의 고통이 이제는 다 소멸되어 마치 <살인의 추억>처럼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뜻일까요?
이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런 식의 성급하고도 낙관적인 결론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일본 후쿠시마현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이상의 유령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항구에는 까마귀떼만 흉흉하게 하늘을 날고 있을 뿐이며, 아직도 방사능에 오염된 쓰나미 희생자 시신 1,000여 구는 수습되지도 못한 체 그냥 방치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야말로 지금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8기 가운데서 언제라도 제2, 제3의 체르노빌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세계는 원전건설에 관심이 지대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대규모 해외 원전건설 수주로 <세계는 넓고 원전수출 대상국은 많다>며 잔뜩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원전안전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화자찬도 만발했는데 그런 <자부심>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자칫 그것이 <자만심>이 되면 큰 사단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의 최대 적은 <자만>이며, <더 이상 중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야말로 가장 위험한 환상입니다. <위기의 기억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안은 그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낮다>는 말처럼 늘 <체르노빌의 추억>을 간직하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교훈 삼아 천재든 인재든 <중대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