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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aragraph:p0002 -->
<div><span>2008년 4월 20일 주일찬양예배</span></div><span><!-- paragraph:p0003 -->
<div>본문: 행 5:1-11</div></span><span><!-- paragraph:p0004 -->
<div>제목: 아나니아와 삽비라</div></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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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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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오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그들은 땅을 팔았는데, 그 판 값 얼마를 감추고 바쳤다가 두 사람 다 죽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부부가 짜고 헌금 좀 속였다고 죽어야 한다면 우리 가운데 과연 몇이나 살아 남겠습니까? 여러분은 안 죽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헌금을 속여 죽었고, 오늘 우리는 안 속여서 아직 살아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왜 죽었고 우리는 어째서 살아있습니까? 땅값 얼마를 감추긴 했어도 그 나머지는 헌금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한 자리에서 부부가 다 죽어 나가야 했다면, 이것은 혹독한 것 같습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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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군에 가면 시범 케이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범 케이스에 걸리면 참 가혹합니다. 그것은 강력한 경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도 시범 케이스에 해당하는 사건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 부부만 헌금을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부부를 본보기로 삼아 우리에게 엄숙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그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절 이하입니다: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구는 지은 죄가 많아 빌라도에게 죽고,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었다면, 나는 그들보다 더 죄가 없다는 착각은 금물입니다. 오늘날은 헌금 속여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급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빌라도에게 희생당하는 사람처럼 당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며 회개를 기다리시지, 즉각적으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심판이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유보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심판하지 않는다고 제 편리한대로 생각해서 계속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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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누구든 헌금을 속이면 이렇게 죽는다는 위협보다는 그게 부부가 동시에 급사할만큼의 큰 죄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덕분에 이렇게 무사한 것입니다. 그런 죄 범하면 다 죽일 수 없으니, 시범 케이스로 이런 죄는 이런 벌이다 하시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이신 것입니다. 헌금을 속이는 것쯤을 예사로 생각할 죄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1절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그래서 헌금 속일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때는 교회가 막 출범했을 때입니다. 교회의 기강과 헌금의 질서를 수립하시기 위해 초기에 이런 사건을 통해 사람들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다고 하니 그 교육적인 효과가 컸나 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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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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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그런데 땅값 일부를 감추었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그들이 땅을 팔아서 헌금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앞절에 보면 구브로 출신 요셉이 땅부자였는데, 그가 땅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니 교회 구제 사업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 요셉을 보고 어떤 시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왜냐면 사도들이 요셉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바나바라고 그러니까 위로의 아들이라고 하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똑같이 땅을 팔아 바쳤지만 아나니아 부부와 요셉이 헌금한 동기가 달랐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동기가 불손하니 그 과정도 불순해진 것입니다. 헌금은 얼마를 바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동기와 과정이 정직하고 진실하냐가 중요합니다. 3절 이하입니다: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사기친 것입니다. 9절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헌금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그 좋은 일이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주님을 시험하는 일로 전락한다면, 그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래서 헌금은 액수보다 그 동기와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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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주님은 우리의 헌금하는 태도를 훤히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하는지를 다 아십니다. 누가 사람을 의식해서 체면치레로 하는지, 누가 아까와서 억지로 하는지, 누가 인색한 마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는 한 두 번 통하니까 이렇게 적당히 해도 되나보다 하고 있지만, 주님이 속고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일 뿐입니다. 주님은 다 아시지만 회개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시범 케이스에 걸렸기에 희생당한 것 뿐입니다. 우리에겐 다만 하나님이 기다리실 뿐입니다. 헌금은 진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고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왜냐면 헌금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고 주님에 대한 우리의 애정표현이요 우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중심을 담아서 바치는 것이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헌금이 거짓이면 내 사랑, 내 믿음이 사기라는 뜻입니다. 부디 자신의 믿음을 위해, 여러분 가정의 축복을 위해 헌금생활을 진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재산 물려 줄 생각하지 말고, 십일조 하는 믿음을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십일조를 하실 때 땅값 얼마를 감추지 말고 주님이 흠향하시기에 합당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옳습니다. 주님이 그런 헌금을 받으면 황송해 마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헌금만 똑 따먹고 마는 강심장이 못 되십니다. 우리가 그런 헌금생활을 못하기에 문제입니다. 항상 땅값의 일부를 감추고 바칩니다. 더 이상 주님 속일 생각 하시지 마시고 온전한 헌금을 통해 주님을 감동시키시고, 그래서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span><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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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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