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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7일 주일낮예배/사순절 셋째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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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고후 9:6-11</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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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씨앗은 먹지 말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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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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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요즘 교회들이 비상입니다. 헌금이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교회의 이런 저런 일들이 터지고, 특히 재정관련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교인들이 많이 시험에 든 겁니다. 또 요즘 살기가 팍팍하니까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때는 헌금부터 줄인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우리 교회도 헌금이 줄었습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해도 교회가 헌금을 구제와 선교에 쓰지 않고 멀쩡한 교회를 부수고 더욱 화려한 교회를 짓거나, 자칫하면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는데 무리하게 밀어붙여 수양관을 짓는다거나, 어느 교회처럼 목사가 100억의 주식투자를 한다 해도, 그것은 교회의 헌금을 잘못 관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 것이지, 내가 낸 헌금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헌금을 하지 않으면 헌금하지 않는 사람만 손해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판단하셔서 문제 있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십니다. 내가 바친 헌금을 하나님은 흠향하십니다. 그리고 헌금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보상도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낙심도 되고 시험에 들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잘 관리하셔서 중심을 잡으십시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교회의 문제 때문에 흔들려서 헌금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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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헌금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헌금은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씨앗입니다. 씨앗은 심어야 수확을 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10)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을 양식과 씨앗을 각각 주셨다는 겁니다. 흔히 우리는 어렵고 힘들어 헌금 못 한다고 하나,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씨앗과 먹을 양식을 주십니다. 우리가 힘들다는 핑계로 씨앗마저 먹어치우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앗과 양식을 각각 주십니다. 농부는 아무리 보릿고개가 혹독해도 심을 씨앗마저 먹지는 않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플수록 씨앗은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식구들이 굶어죽지 않습니다.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씨앗마저 먹어치우면 그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가난할수록 씨앗을 잘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해 굶더라도 내년에는 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배고프다는 핑계로 씨앗마저 홀라당 먹어버립니다. 우리 교회 농장에 봄마다 씨앗을 뿌립니다. 매번 쪽파 씨가 없습니다. 해마다 오춘화 권사님 모친께 씨앗을 부탁합니다. 그러니 오 권사님 모친께서 어떻게 농사짓는 사람이 씨까지 다 먹느냐고 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농사를 짓는다면 씨부터 갈무리를 잘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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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여러분, 적게 심으면 적게, 많이 심으면 많게, 팥을 심으면 팥을, 콩을 심으면 콩을, 심지 않으면 수확이 없는 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헌금은 씨앗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가난하다고 심어야 할 씨앗마저 먹어치우지 마십시오. 가난하다는 게 씨앗마저 먹어치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할수록 씨앗을 잘 건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씨앗을 뿌리고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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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도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씨앗도 씨앗 나름입니다. 헌금이 씨앗이라고 할 때 어떤 씨앗일까요? 우선 축복의 씨앗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면 헌금은 ‘풍성하게 하는 씨앗’이고 ‘넉넉하게 하는 씨앗’입니다. 그래서 절대 시험에 들었다고 심지 않거나 사정이 어렵고 배고프다고 해서 먹어버리면 안 됩니다. 헌금이 축복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먹을 양식도 없는데 무슨 씨앗이냐며 먹어버리면 나중에 굶습니다. 당장 쓸 생활비도 부족한 판에 무슨 헌금이냐고 하면 더는 그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복을 수확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을 심으면 최대 100배에서 최소 30배의 수확을 보듯, 씨앗을 심으면 하나님이 열매를 수확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축복의 법칙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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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고린도후서 9장에서 보았습니다. 바로 앞장 8장을 보면 마게도냐 교회의 얘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하는 말이 ‘많은 환난과 시련,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 그들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했다. 그들이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진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가난한 주제에 적당히 헌금할 일이지 힘에 부치도록 헌금 하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분수껏 해야지 힘에 지나치도록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성경은 헌금이 축복의 씨앗이기에 힘에 지나치도록 하는 게 맞다고 합니다. 그래야 지금은 어렵지만 올 가을엔 풍성한 수확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헌금이 축복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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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과부가 자기 전 재산인 유대 돈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주님이 그것이 그 과부의 전 재산임을 아셨습니다. 주님이 그 과부를 나무라셨습니까? 무책임하다고, 헌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책망하셨습니까? 도리어 모든 헌금 행위의 모범으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 헌금은 가난한 자도, 극빈자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축복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어떻게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주님이 달라고 하십니까. 오병이어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어린 아이의 한 끼 도시락인데 그것마저도 주님이 요구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너무 가혹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소년이 주님께 다 드렸을 때 그 오병이어가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나 떡이 남았습니다. 지금 통에 가루가 없고 병에 기름이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줌 가루와 기름 한 홉으로 떡을 구워 먹고 죽으려고 하는데 엘리사가 나타나 그 떡 나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얘깁니까. 그래서 그 과부가 그 떡을 엘리사에게 바쳤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과부와 굶주린 아들은 죽고 엘리사는 혼자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 떡을 받아든 엘리사가 이제 나가서 동네방네 다니면서 빈 그릇을 다 모아오라고 합니다. 잔뜩 모아왔습니다. 그때부터 그 그릇에 철철 기름이 넘쳤습니다. 이제는 더는 필요 없다고 하자 그 기름이 멎었습니다. 그게 구약 열왕기하 4장의 내용입니다. 헌금은, 헌상은, 헌물은 축복의 씨앗입니다. 심고 뿌리면 반드시 풍성한 수확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법칙입니다. 절대 어렵고 힘들고 시험에 들었다고 씨까지 먹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헌금은 보통 씨앗이 아니고 축복의 씨앗입니다. 최대한 많이 심으셔야 최대한의 복을 수확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7절 하반절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라고 합니다. 봄에 인색하게 심으면 가을에도 인색하게 수확합니다. 봄에 넉넉하고 풍성하게 심으면 가을에도 풍성하게 수확합니다. 심은대로 거둡니다. 그래서 인색하게 심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헌금이야말로 일차적으로 축복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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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앙의 씨앗입니다. 헌금과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헌금과 신앙은 반드시 정비례합니다. 내 신앙이 어느 수준일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헌금 수준을 보시면 딱 그 수준입니다. 누구나 자기 신앙만큼 헌금합니다. 가장 정확한 잣대가 지금 내가 하는 헌금입니다. 헌금은 나의 신앙고백입니다. 말로 하는 신앙고백은 믿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과장과 허풍, 미사여구가 동원됩니다. 또 사도신경도 형식이 되고 요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절대 못 속입니다. 내가 오늘 헌금을 이만큼 드렸다면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의 피가 그리워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가장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생명 10개나 100개의 존재가 이삭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면 아브라함의 모든 게 다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의 인간성, 믿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백일하에 다 드러납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백세에 얻은 독자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달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면 꼼짝없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다 확인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그 요구에 이삭을 바친 겁니다. 자기 생명보다 10배 100배 더 소중한 이삭이지만 그 이삭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장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임명합니다. 요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즘 우리에게 돈을 바치라고 합니다. 돈이 우리에게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돈 한 번 바쳐 보라고 하면 우리의 인간성이 다 드러납니다. 우리가 돈에 가장 약하고, 돈이라고 하면 목숨까지 거니까, 우리에게 돈이 이삭이니까, 헌금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확인하십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참 대단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한 번도 제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 첫 봉급을 몽땅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청년들은 보험에 가입한 겁니다. 우리 청년들의 생애의 축복을 하나님이 책임지는 겁니다. 본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한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그런 결과가 발생한 겁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첫 월급을 바쳤다는 것은 나의 모든 수입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 겁니다. 첫 봉급을 바친 것이지만 평생 받을 봉급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은 열납하신 것입니다. 십일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 수입의 1/10이 아니라, 1/10을 바치면서 10/10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내 모든 수입과 소유가 내 목숨 내 심장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십일조로 헌금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할 수가 없는 게 또한 헌금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축복의 씨앗을 하나도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겠다는 게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어야 헌금하지만, 헌금해야 또한 내 믿음이 자랍니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헌금이 없으면 절대 믿음이 안자랍니다. 헌금이 믿음의 씨앗입니다. 헌금과 믿음의 함수관계를 깊이 이해해야 신앙인입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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