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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지난해 12월에 개막해 오늘 폐막되는 서울시립미술관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로비에는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걸려있습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5,6년 전쯤에는 이 분당 서현역 보행자존에도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썩 괜찮은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샤갈의 작품에는 <마을에 내리는 눈>도, <눈 내리는 마을>도 없습니다. 단지 1911년 작품인 <나와 마을>이 김춘수 시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물론 그 그림에도 눈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며칠전 서울 경기지방과 강원도에 넉넉한 <삼월의 눈>이 내려 모처럼 색채의 시인인 샤갈과 언어의 시인인 김춘수의 작품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꽤나 멋드러진 전시회 대미를 장식한 것 같습니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러시아의 유대인 정착촌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와 음악을 사랑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매우 감수성이 풍부한 유대 소년이었습니다. 비록 후에는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하긴 했어도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요 러시아 태생이라는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늘 유다이즘의 고유한 정서와 슬라브 민족의 꿈과 향수를 자신의 예술 세계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또 제1,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같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고향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를 유랑하며 디아스포라로 살면서도 자신이 겪은 그 숱한 고통과 비극을 가장 순수한 사랑과 서정과 환상으로 승화시켜 근대 구상미술의 위대한 선구자가 됐습니다. 1950년대 남프랑스 방스에서 교분을 나눴던 피카소는 샤갈을 <마티스 이후 색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화가>라고 했고, <르느와르 이래 샤갈만큼 빛을 잘 파악한 화가는 없었다>며 극찬했습니다. 말년의 샤갈은 특히 성서를 회화로 옮기는 작업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931년에서 1934년 사이에는 구약성서를 주제로 약 40여 점의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1950년대에는 성서 주제의 대작들을 연작으로 발표하면서 상설 전시관을 꿈꾸기도 했는데, 1973년 드디어 그 소망이 이뤄졌습니다. 프랑스 니스에 그의 성서 회화 만을 모아 전시하기로 한 전용 <국립 마르크 샤갈 미술관>이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화성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함께 개관식에 참석한 샤갈은 이렇게 답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성서에 매료되었습니다. 성서는 모든 시대의 시와 예술의 가장 위대한 원천이었습니다. 성서는 마치 자연의 메아리와도 같은 것이며 그것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바로 내 예술의 비밀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도 <성서 이야기>라는 섹션을 별도로 구성해 아가서 연작을 비롯 모세, 예레미야, 다윗과 밧세바, 아브라함과 사라, 노아와 무지개, 회개한 탕자 등 많은 작품이 소개됐는데 그게 다 프랑스 <국립 마르크 샤걀 미술관> 소장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샤갈의 캔버스를 가장 신비하게 하는 것은 역시 그의 독특한 몽환적 공간 설정입니다. 샤갈의 그림은 언제나 무중력 상태입니다. 시골 마을도, 아름다운 신부도, 날개 달린 천사도, 양과 염소와 나귀도 다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춤을 추듯 깃발처럼 나풀거립니다. 그의 대표작인 <도시 위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맑은 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훨훨 부유하며 마음껏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의 그림인데,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권력이나 금력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샤갈이 평생을 두고 표현하려 했던 심상의 메시지야말로 바로 그 <사랑>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깔은 사랑이다>(마르크 샤갈).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역시도 바로 그런 샤갈 혼의 <자유로움과 사랑>을 형상화 한 게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