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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왕의 기도(시편 1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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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div>
왕의 기도 </div>
<!-- paragraph:p0002 -->
<div>시 144:1-11</div>
<!-- paragraph:p0003 -->
<div>2011.03.25</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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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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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최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을 두고 세간의 논란이 뜨거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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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질은 &lt;기도&gt;인데 논쟁의 초점은 오직 대통령의 &lt;무릎&gt;에 맞춰져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옛 군주시대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다 무릎을 꿇는 게 당연합니다.</div>
<!-- paragraph:p0007 -->
<div>만약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오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lt;한국교회가 절대권력을 무릎 꿇렸다&gt;거나 &lt;대통령이 한국교회 앞에 무릎을 꿇었다&gt;거나 &lt;교회가 오만방자하다&gt;는 등의 비난은 다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억지 주장에 불과할 뿐입니다</div>
<!-- paragraph:p0008 -->
<div>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치리한 왕이었지만 &lt;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gt;(시95:6)고 했고, 본문 10절에서는 &lt;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 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라&gt;고 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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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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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나의 반석</div>
<!-- paragraph:p0011 -->
<div>이 시는 왕의 기도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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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 하시나이까&gt;(3절).</div>
<!-- paragraph:p0013 -->
<div>다윗은 이렇듯 겸손한 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lt;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gt;(1절).</div>
<!-- paragraph:p0014 -->
<div>&lt;반석&gt;이란 든든한 기반을 뜻합니다. &lt;요새&gt;요 &lt;산성&gt;이라는 표현도 다 같은 의미입니다.</div>
<!-- paragraph:p0015 -->
<div>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반석이요 우리 가정의 반석이십니다. </div>
<!-- paragraph:p0016 -->
<div>주님은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진다(마7:25-27)고 하셨습니다. </div>
<!-- paragraph:p0017 -->
<div>세계 최강의 내진 설계를 자랑해 온 일본의 가옥, 건물,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까지도 규모 9.0의 지진과 10m 높이의 쓰나미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div>
<!-- paragraph:p0018 -->
<div>주님을 당신의 인생과 가정의 반석으로 삼으십시오. 그래야 쓸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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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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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나의 사랑</div>
<!-- paragraph:p0021 -->
<div>&lt;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gt;(2절).</div>
<!-- paragraph:p0022 -->
<div>당신도 다윗처럼 이런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까?</div>
<!-- paragraph:p0023 -->
<div>요한일서 4:19은 &lt;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gt;고 했습니다. 또한 &lt;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t;(요일 4:16)고도 했습니다.</div>
<!-- paragraph:p0024 -->
<div>바울 사도는 &lt;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gt;(롬8:28)고 했습니다.</div>
<!-- paragraph:p0025 -->
<div>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니 이 얼마나 불가사이한 말씀입니까? </div>
<!-- paragraph:p0026 -->
<div>우리가 뭔데요? 먼지 같고 벌레 같은 우리가 뭐 잘난 존재고, 하나님은 또 뭐가 아쉬우셔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걸까요? </div>
<!-- paragraph:p0027 -->
<div>따라서 바울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정말 저주를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고전 16:22).</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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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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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나의 노래</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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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gt;(9절).</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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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새 노래로,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십시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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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주는 우리의 영원한 노래시며 찬양이십니다. 다윗은 평생을 노래하며 주를 찬양한 사람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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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아니, 대대로 주를 찬양하겠다(시 145:4)고 맹세한 사람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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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요한계시록에 소개되는 천상의 예배 실황을 보십시오. 4장에는 보좌 주위 네 생물의 찬양, 5장에는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 7장에는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명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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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찬양은 영원합니다. 찬양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찬양을 많이 하십시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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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 사람이 훗날 천국문화에 가장 잘 적응할 것입니다. </div>
<!-- paragraph:p0037 -->
<div>&lt;나의 노래&gt;되신 주님이 당신의 삶에 보다 풍성한 찬양의 은혜를 베푸시길 빕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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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