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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10320m: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눅 13:1-5, 요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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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0일 주일낮예배/사순절 둘째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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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눅 13:1-5, 요 9:1-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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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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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눅 13:1-5&gt;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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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요 9:1-3&gt;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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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요즘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하는 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가능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이 설교도 홈페이지에 올라가면 전 세계인들이 제 설교 영상을 다 봅니다. 그래서 말조심을 해야 하고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말, 설교만 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내내 조용기 목사님이 뭇매를 맞았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에게 지금도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2일 인터넷 신문인 &lt;뉴스미션&gt;이란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이 문제되었습니다. 11일날 일본 대지진 참사가 일어났는데, 그 일본의 불행에 대해 조용기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문제가 된 겁니다. 일본이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 숭배로 나아가기에 하나님이 내린 경고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수많은 네티즌이 참혹한 아픔을 겪는 일본인에게 해서는 안 될 망언을 했다며 비난을 했고, 심지어는 독설가로 명성이 높다는 진중권 씨는 대놓고 ‘이런 정신병자가 목사질을 하고 자빠졌다. 저런 헛소리를 듣고도 아멘 할렐루야 하는 골빈 신도가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초유의 일본 사태에 대한 조용기 목사님의 해석과 그 해석에 대해 가한 네티즌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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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주님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제가 본문을 두 군데 읽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입니다. 어느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맹인을 만났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게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의 질문이 여러분께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친절하지 않습니까? 문제를 내고 나서 답을 반쯤 알려준 격입니다.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났다는 걸 자명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친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문제를 주관식으로 내지 않고 객관식으로 내면서 보기를 2개만 줍니다.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문제의 난이도를 따질 것도 없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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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님이 답하시기를, 그 질문이 틀렸다고 하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틀렸다는 겁니다. 부모의 죄도 아니고, 본인의 죄도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이 잘못 되었다는 겁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무언가 하나님이 이 불행한 사람을 통해 하실 일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겁니다. 파격적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남의 불행을 보며 무슨 죄 때문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무슨 죄가 많아 일본 사람들은 대참사를 당할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종교적 선입견,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고 하십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 불행을 통해 나타내실 계시가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제자들과 주님의 시각이 이렇게도 다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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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찾아와 끔찍한 사건을 전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갈릴리 사람을 처단해서 그 피를 성전 제물에 섞었다는 겁니다. 원래 갈릴리 사람들은 반골 기질이 강했습니다. 어느 지방보다 로마 당국에 대한 저항이 강했습니다. 이슬람의 알카에다, 하마스 같은 집단처럼 유대에도 젤롯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빌라도나 로마 당국에는 갈릴리 사람들이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갈릴리 사람들이 유월절에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사람들을 죽여 성전에 그들의 피를 뿌린 겁니다. 반란세력으로 그들을 몰아붙인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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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들은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주님 앞에 와서 엽기적인 사건을 얘기한 사람이나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인식이 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남보다 죄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실을 주님이 꿰뚫어 보셨기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18명이나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갈릴리 사람 몇몇이 빌라도에게 당한 것은 죄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아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 당시의 고정관념을 강하게 부정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저렇게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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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 곧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같이 망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예루살렘은 시온산 위에 다윗이 도성을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물이 참으로 귀했습니다. 서울의 도봉산보다 더 높은 곳에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 밖 기혼 샘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여 인공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실로암입니다. 그러므로 실로암은 예루살렘의 젖줄이었습니다. 그래서 망대를 높이 세우고 항상 경계근무를 세운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 망대가 무너져서 그 아래에 있던 18명이 깔려 죽은 겁니다.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그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을까?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랬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해석은 교만입니다. 즉 나보다 저 사람이 죄가 많다고 생각한 겁니다. 우리가 남의 불행을 대할 때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죄 때문에 저 사람들이 망했다면 망하지 않은 나는 죄가 없다는 건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남의 불행 앞에서 자신을 성찰해야 옳다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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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주님은 죄 때문에 맹인이 되었다는 당시 일반적인 편견을 단호히 부정하셨습니다. 또 남보다 죄가 많아 참사를 당했다는 종교적 해석도 가차 없이 배척하셨습니다. 도리어 남의 불행과 참사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만이나 교만은 금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의 아픔에 동참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일본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해 어설픈 종교적 잣대를 대지 마십시오.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을 발휘하십시오. 일본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저런 변을 당했고, 우리는 죄가 적어서 그런 변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처럼 동정심을 갖고 측은지심으로 이웃을 위로하고 돕는 그런 사람이 올바른 신자입니다. 불행을 당하고 있는 일본인을 위해 기도하십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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