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320n: 난리의 소문과 지진이 있으리라!(마 24:3-18)

2011년 3월 20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마 24:3-18
제목: 난리의 소문과 지진이 있으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종말이 무엇입니까? 3절 하반절을 보니 세상 끝입니다. 말세(末世)입니다. 종말에는 주님이 재림하셔서 역사를 종결짓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과 주님의 재림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그 종말이 언제냐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종말에 관해 말씀합니다. 

우선 종말에 관한 개념적 혼란이 없어야 합니다. 종말은 시간의 한 정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 시대를 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구속사적으로 구분하면, 창조시대, 족장시대, 율법시대, 복음시대, 지금은 교회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종말은 교회시대를 말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구속사적으로 주님의 재림 이외에는 더는 일어날 사건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교회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시간의 정점이기보다는 기간이요 시대입니다. 앞으로 더 일어날 사건이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만 남은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종말을 말씀하신 겁니다. 종말은 2000년 전에 이미 개막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젠 주님의 재림만 남았습니다. 주님의 심판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종말이 맞고 말세가 맞습니다. 실제 이 세상 끝이 언제 임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주님도 모른다는 뜻인데, 이건 좀 과장입니다. 이만큼 비밀에 부쳐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때를 안다는 것은 다 이단입니다. 아들도 모른다는 것은 주님이 과장법을 쓰신 겁니다. 42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언제 오시든 깨어 있으면 문제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성경이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44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야말로 주님이 도적처럼 오신다는 겁니다. 

이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여쭤 봤습니다.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오시는 순간은 누구도 모르지만, 그 오시는 징후가 있을텐데 그게 뭡니까? 라는 겁니다. 이것까지는 주님이 용납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 이런 징후가 있다고 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의 말씀하신 징조는 세 가지입니다. 5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1절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23절 이하입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선지자 곧 적그리스도가 많이 출현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자칭 재림 예수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많습니다. 전도관의 박태선이나 통일교의 문선명 같은 사람이 재림 예수 1세대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이나 신천지의 이만희는 재림 예수 제2세대입니다. 하여간 우리나라에 제일 많습니다. 이게 다 우연이 아니고 아주 두드러진 말세적 현상입니다. 주님이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미혹당하지 말라는 겁니다. 32절을 보면 무화과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했습니다. 이런 징후를 보면 주님이 가까이 왔음을 감 잡으라는 겁니다. 

6-7절입니다.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전쟁입니다. 요즘 아프리카와 중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북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한 민주화 운동이 중동을 휩쓸고 있습니다. 지금 이시각도 리비아는 서방 국가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진압군 사이에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말세적 현상이라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통해 시대적 징후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주님이 문 밖에 와 계신 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당장에 내일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까이 와 계신다는 사실을 감 잡으라고 하십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11일에 일본 동부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도 9.0입니다. 게다가 쓰나미와 원전 폭발이 함께 왔습니다. 그야말로 지금 일본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한 달 전에도 뉴질랜드에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제2의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작년 1월에는 북미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2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나라 전 인구의 1/3이 이재민이 되었습니다. 아이티 지진 한 달 뒤에는 남미 칠레에서도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8.8의 강진이었습니다. 건물 150만 채가 파손되었고, 수천 명의 사상자와 5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게 작년과 올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지진입니다. 이게 다 주님이 멀지 않아 오신다는 경고음이라는 겁니다. 절대 우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다고 내일 당장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런 징조가 발생하면 주님이 문 앞까지 오셨구나 생각하고 자세를 고쳐 잡고, 긴장하라는 겁니다. 주님 맞을 채비를 하라는 겁니다. 병이라는 것도 죽음을 준비하라는 경고입니다. 누가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삽니까? 급살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병이 주어진다는 것은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종말의 징후를 보이시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말미를 주시는 겁니다.

어떻게 준비하라고 하십니까? 16절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유대 지방에 있는 산은 시온 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도망하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전으로 도망하라는 겁니다. 성전을 더욱 가까이하며 살라는 겁니다. 마지막 때는 성전을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17절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왜 지붕 위에 있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더욱 기도에 정진하라는 말씀입니다. 집안에 있는 물건 때문에 기도생활에 소홀하지 말고 더욱 기도에 힘쓰라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집안 물건 생각나서 내려와 물건 챙기지 말라는 겁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을 자제하라는 겁니다. 늘 그래야 하지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특히 물질에 대한 애착을 절제하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18절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자기 소임에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겁니다. 주님이 재림한다고 흰옷 입고 산 위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구원의 성인 소알을 위해 뛰다가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인 롯의 아내를 생각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자꾸만 뒤에 미련이 많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끝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광야에서 객사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꾸만 하찮은 겉옷 때문에 뒤돌아보면 안 됩니다. 주님이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흰옷 입고 높은 산에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십니다. 교회 중심, 기도에 정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주님이 언제 오셔도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부디 주님이 일어주신대로 이렇게 말세를 사시길 바랍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