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3n: 나실인(삿 14:1-9) 남선교회 헌신예배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1년 3월 13일 주일오후예배/남선교회 헌신예배
본문: 삿 14:1-9
제목: 나실인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오전에는 양과 염소 얘기를 했습니다. 구약의 사울 왕, 신약의 가룟 유다 같은 사람들은 염소였습니까? 양이었습니까? 둘 다 처음에는 양으로 이 땅에 왔는데 결국은 불순종하고 타락해서 염소로 생을 마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염소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운이 좋아 양 틈에 끼어 있다가 결국 염소의 본색을 드러내며 염소의 길을 간 겁니까? 그들에 대한 신구약 성경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후자가 맞습니다. 불행하고 죄송한 얘기지만 후자가 맞습니다. 한 때 양 속에서 양의 행세를 하며 양처럼 살았으나 결국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염소였습니다. 택함 받은 땅에도 씨앗이 떨어졌지만, 그렇지 않은 땅에도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이를테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는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같은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추수꾼이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합니다. 택함 받지 못한 가라지라도 알곡과 섞여 자랄 수 있고, 게다가 막판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만, 곳간에는 못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삼손인데,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삼손의 최후는 너무도 참혹했습니다. 그는 양이었습니까? 염소였습니까? 그는 나실인이었습니다. 나실인은 구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구별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이 나실인입니다. 성경에는 그 출생 내력이나 탄생기사가 나오는 위인이 흔치 않습니다.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도 어떻게 났는지, 고향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다윗도 출생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모세라던가 이삭이라던가 사무엘, 세례 요한, 예수님 정도만 탄생기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사기 13장을 보면 삼손의 출생 내력이 나옵니다. 그 내력은 거의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 수준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예고합니다. 사사기 13장 5절입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삼손의 출생이 이랬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다운 면모가 없었고, 허랑방탕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살과도 같습니다. 삼손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택함 받은 나실인이었지만 그 생활 때문에 버림 받았을까요? 아니면 구원이 취소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사람은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전설적인 힘을 허랑방탕한 데에 허비한 사람이고, 마지막도 거의 자살에 가까운 참혹한 죽음인데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습니다. 왜냐면 삼손은 처음부터 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명예의 전당에 삼손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올라가 있으면 누가 뭐래도 확실합니다.
삼손의 최후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사사기 16장 28절이하입니다.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삼손을 위대한 믿음의 선진의 반열에 세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개차반처럼 살아도 양은 양입니다. 구원의 반열에서 탈락되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잣대를 갖다 대면 삼손은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삼손은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는 다릅니다. 삼손은 엉망으로 살았지만 처음부터 양이었고,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염소였습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이 땅에 태어났음에도 어떻게 하여 몰락했을까요? 어쨌든 삼손의 구원은 부끄러운 구원의 전형입니다. 우선 삼손은 자기 약점을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나실인에게도 약점이 있습니다. 아킬레스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을 보면 자기 관리가 안 된 사람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이게 장성한 삼손에 대한 첫 번째 기록입니다. 삼손이 딤나에 가서 한 여자를 봤다고 합니다. 전설적인 나실인의 출발치고는 뭔가 좀 이상합니다. 여자 얘기부터 나오는 겁니다. 그의 최대의 약점이 바로 여자 문제였습니다. 삼손의 얘기가 13장에서 16장까지인데 16장까지도 여자 얘기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자신의 약점을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반성이나 회개 없이 자제도 절제도 없이 욕구대로 살았습니다. 영웅, 신자, 나실인이라 해도 자기 약점을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그 약점에 덜미를 잡힙니다. 마지막엔 삼손이 붙잡혀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립니다. 삼손이 들릴라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렇게 망했겠습니까?
다음으로 삼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8절입니다.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딤나는 블레셋 소속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적국입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세운 것도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적국 블레셋으로 결혼하기 위해 딤나로 삼손이 가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피를 섞으면 안 된다는 게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나실인 삼손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원래 나실인은 금기가 있습니다. 머리를 자르거나, 독주를 마시면 안 됩니다. 또 사체(死體)를 만지면 안 됩니다. 심지어 그는 죽은 사자의 사체 안에 있는 꿀까지 파먹었습니다. 금기를 다 깨버린 겁니다. 나실인이 앞장서서 금기를 지켜야 하는데 삼손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망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방 여인과 잡혼하면 안 된다는 하나님의 계명이 있음에도 적국의 여인과 결혼했고, 사체를 가까이 하면 안 되는데 사체를 가까이 했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들릴라에게 머리를 다 깎입니다. 결국 힘이 다 빠지고 결박을 당해 적국에 끌려갑니다. 계명을 지켰으면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명 곧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무늬는 나실인인데 실제 삶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삼손은 세상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사사기 14장 16-17절입니다.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17]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삼손은 블레셋 출신 아내에게 닦달을 당합니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힘의 비밀을 다 폭로합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삼손은 사로잡힙니다.
마귀는 교활해서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습니다. 항상 내 주변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를 이용해 나를 올무에 빠트립니다. 아내가 날마다 울면 남편이 어찌할 도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마귀가 가족을 이용해 우리를 실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넘어갑니다. 주일날 아이가 놀이동산 가자고 떼쓰면 주일이고 뭐고 놀이동산 가야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남편이 다른 데에 가자고 하면 가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뭔가 해 보고 싶어도 아내가 정색을 하고 반대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항상 마귀는 가족을 이용합니다. 삼손도 아내가 7일 동안이나 우니까 절대 알려줘서는 안 될 비밀을 폭로하고 맙니다. 그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벌써 주님이 40일이나 굶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이 없어도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고 싶은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마귀의 미혹을 물리치십니다. 주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이제 곧 공생애를 시작하는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얼마나 공생애 사역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절 한 번만 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준다고 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 한 번만 하면 다 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단호히 모든 유혹을 뿌리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수작하고 타협하며 살 수 없습니다. 삼손이 유혹에 넘어갔기에 망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광야 40일의 고행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주님 생각하시며 모든 유혹을 이기십시오. 삼손을 반면교사로 삼으십시오. 아무리 현란해도 주님 뜻에 부합되지 않으면 물리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십시다. 삼손만 구별된 나실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나실인입니다. 삼손 같은 실패자가 되지 마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