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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강변에서</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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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시 137:1-9</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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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011. 03.10</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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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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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바벨론 포로지에서 쓴 시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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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시인은 BC 586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비참한 포로생활, 에돔으로 인한 아픔 등 모든 민족적 비극을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고통은 역시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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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시인은 지금 그런 영적 아픔을 겪으며 이 비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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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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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시온을 기억하며 울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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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gt;(1절).</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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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바벨론에는 유명한 강들이 많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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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유프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그발강이 있고 또 그 강들의 많은 지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포로들이 강제 노역의 현장인 그 강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끊임없이 절망과 죽음을 생각하던 그 고뇌의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시온이란 유다 백성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는 모국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서린 지상에서 가장 거룩한 땅입니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요 영적인 원적지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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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나 그 시온으로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또 언제 그 포로생활이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시온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어쩌면 다시는 그 땅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포로지 강변에 앉아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시온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시온에 대한 깊은 향수와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시온은 저 천국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때로 허무의 강가에 앉아 시온을 사모하며 울 수 있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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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gt;</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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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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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gt;(2절).</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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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수금, 하프는 원래 기쁨을 노래하는 악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다 포로들은 기쁨의 노래가 아니라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아예 수금을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둔 채 육성으로만  탄식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쁨의 노래, 환희의 노래만 부르라는 법은 없습니다. 과거 바벨론 강변에서 처절한 슬픔의 노래를 불렀던 유다 포로들처럼 비탄의 노래도 불러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생각하며 자복할 때는 그야말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고 통절한 슬픔의 노래를 불러야 옳습니다. 어제 &lt;재의 수요일&gt;을 시작으로 올 사순절이 개막됐습니다. 부활절 전 40일간의 고난기간인 이 숙연한 참회의 절기에 부디 슬픔의 노래를 부르십시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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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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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방 땅에서 어찌 노래를 부르랴</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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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gt;(4절).</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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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바벨론 사람들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유다 포로들에게 시온의 노래를 강요하는 대목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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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자기들의 여흥을 위해 춤추며 노래하는 기쁨조가 되라는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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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를 하라&gt;(3절).</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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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나 유다 포로들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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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어찌 그들 앞에서 시온의 노래,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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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어찌 하나님의 백성이 시온의 노래로 이방인들의 즐거움에 복무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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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렇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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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믿는 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로서의 자존감에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일은 정중히 사양하거나 단호히 피해야 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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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직업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거나 믿는 자에게 떳떳하지 못한 직종이라면 당연히 재고해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다운 고민이며 결단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이방인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는 비굴한 짓은 삼가야 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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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
</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