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7m: 갈릴리의 봄(마 13:1-9)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1년 2월 27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 13:1-9
제목: 갈릴리의 봄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경칩이 언제입니까? 오늘이 아니고 다음 주일 3월 6일입니다. 지난 19일이 우수였고, 그로부터 15일이니까 다음 주일입니다. 경칩으로부터 보름이 지나면 춘분입니다. 여러분 경칩은 어떤 절기입니까? 우리 민족 본래의 절기로 보면 경칩은 사실상 부활절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경칩이 되면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경칩 때는 굴이나 땅 속, 물속에서 잠자던 동물이나 곤충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채소들이 월동하고 경칩이 되면 깨어납니다. 그래서 생육을 시작합니다. 그러니 부활절 아닙니까. 올해 부활절이 4월 24일인데 그건 기독교의 부활절이고, 추석이 우리 민족의 감사절이듯이 경칩은 우리 민족 고유 정서상 다음 주일이 부활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가, 누가복음에도 나오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현장 묘사가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갈릴리의 봄입니다. 2000년 전의 얘기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지 모릅니다. 어느 봄날 주님이 갈릴리 호숫가에 나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호숫가에 정박해 놓은 작은 배에 오르셔서 그 배를 강단 삼아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의 화두는 씨 뿌리는 얘깁니다. 농사짓는 얘깁니다. 봄에 썩 잘 어울리는 주제입니다. 지금 뭍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주님과 주님 뒤쪽의 갈릴리 호수를 보고 있고, 주님은 청중들과 그 뒤로 펼쳐진 밭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른 봄이니 그 밭에서 씨를 뿌리고 있었겠지요. 거기에서 주님은 화두를 삼으신 겁니다. 이렇게 주님의 비유는 현장감이 있었습니다. 항상 공감이 가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저 멀리에서 농부들이 열심히 씨를 뿌리는 광경을 주님이 보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다는데 아마 밀을 뿌렸을 겁니다. 갈릴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곡창지대입니다. 이게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좀 낫다는 뜻이지 본래 팔레스틴은 땅이 거칩니다. 특히 엉겅퀴가 많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씨를 뿌리면 그 씨가 반드시 좋은 땅에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돌밭에, 가시밭에, 또 어떤 씨는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갈릴리 지방의 밀 이삭은 그 낱알이 최저 34-100개 정도가 달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30배 60배 100배라고 하신 겁니다.
주님이 해석하시기를 우선 씨앗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토양 곧 밭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19절입니다.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네 종류의 마음, 심령 상태입니다. 오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고 지금 내 마음은 과연 어떤 밭인지 진지하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토양은 길가입니다. 3절 하반절 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여기서 말하는 길가는 농로나 밭둑입니다. 농로나 밭둑은 사람이 늘 밟고 다닙니다. 그래서 단단합니다. 농부가 밀 씨앗을 한웅큼 잡고 흩뿌리다보면 그 씨가 반드시 옥토에만 떨어지지 않고 길가에도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길가에는 흙이 단단해서 씨앗이 뿌리를 못 내립니다. 길가에 그냥 노출이 되어 있으면 잽싸게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19절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야말로 씨가 안 먹힙니다. 아무리 말씀이 뿌려져도 그 마음밭에 뿌리를 못 내립니다. 말씀 수용이 안 되는 겁니다. 누구나 말씀을 들으면 아멘하고 그 말씀을 접수해야 하는데 길가와 같은 사람은 마음 문이 굳게 닫혀있고 단단히 굳어있기에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씨앗이 노출되어 있으니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새는 악한자입니다. 마가복음 4장 15절을 보니 사탄이라고 합니다. 또 누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사탄이 길가에 노출된 그 씨앗을 즉시 와서 먹어버리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게 사탄의 본업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밭에 떨어진 말씀을 내가 챙기지 않으면 잽싸게 마귀가 와서 앗아갑니다. 마귀는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절대 우리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에겐 사실 이런 사람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말씀이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 밭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돌밭입니다. 5절이하입니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짝 밭에는 농사가 안 됩니다. 웰빙촌에도 돌이 많은 고랑이 있습니다. 보면 해마다 거기에는 뭘 심어도 안 됩니다. 돌짝 밭은 흙이 얕고 돌이 많기에 작물이 뿌리를 못 내립니다. 움은 틔우나 더는 자라지 못합니다. 주님의 해석은 20절 이하입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어쩌면 이렇게 명쾌하게 꿰뚫어 보고 계실까요? 이게 바로 돌짝 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의 씨가 떨어지면 일단은 아멘하면서 받고 은혜를 받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뿐입니다. 돌아서면 식어 버립니다. 조금만 시련이 오고 아픔이 오면 당장에 시험에 듭니다.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소위 냄비 신앙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방방 뜨지만 금새 싸늘해집니다. 돌짝 밭이어서 그렇습니다. 뿌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는 순간에는 눈물도 흘리고 헌신도 하지만 작은 어려움이 닥치면 낙심하고 원망하고 교회도 안 나옵니다. 툭하면 시험에 들기 때문에 목회자가 대하기에 가장 난감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돌밭이라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셋째는 가시밭입니다. 7절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말씀에 대한 주님의 해설은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음이 가시밭과 같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씀이나 믿음이나 교회보다는 항상 세상적인 데 관심이 많습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이 훨씬 큰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고 성령의 감동이 있어도 말씀이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가시의 기운이 그런 것들을 다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들어도 마음은 항상 콩밭에 가 있습니다. 저 세상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워낙 가시의 기운이 압도적이어서 성령의 역사니 말씀의 역사니 하는 게 내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겁니다. 세상적인 기운이 항상 짓눌러 버립니다. 성령은 사실 항상 우리 안에서 계시하십니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감을 못 잡습니다. 가시의 기운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시라는 말은 팔레스틴의 엉겅퀴를 말합니다. 엉겅퀴가 있는 주변에는 다른 작물이 안 됩니다. 엉겅퀴는 뿌리를 깊게 내라고 넓게 펴기 때문에 그 기운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떨어져도 위축이 되어서 뿌리를 못 내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옥토입니다. 좋은 땅입니다. 8절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23절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한 마디로 씨가 먹히는 마음입니다. 이게 좋은 땅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착한 마음, 열린 마음, 부드러운 마음, 순종하는 마음으로 씨를 받아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실천하여 마침내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내는 사람이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왜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지적 욕구충족을 위해서입니까? 예배의식상 말씀을 들어줘야 합니까? 설교하는 자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결단하고 그 말씀을 구현하자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든 말씀이 내 마음 밭에 뿌려져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존재에 보람이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작물이 잘 되는 밭도 그냥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반드시 갈아엎어야 합니다. 우리 웰빙촌에서 수년간 농사를 지어보니 제일 힘든 게 밭 뒤집는 것입니다. 그 삽질이 가장 힘들고 고됩니다. 그러나 뿌린 씨에서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게 힘들다고 그냥 씨를 뿌리면 작물이 안 됩니다. 옥토를 만든 다음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최대 100배에서 최소 30배의 수확을 볼 수 있습니다. 계절적으로 지금 그 일에 착수해야 합니다. 지난해까지는 어떻게 했든 올해는 우리의 마음 밭을 때 놓치지 말고 갈아엎읍시다. 경칩이 다음 주일입니다. 마음 문의 빗장을 뽑으십시오. 활짝 여십시오. 딱딱하기 그지 없는 여러분의 마음 밭을 갈아엎으십시오. 호세아 선지자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렇게 호소했습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부디 올해는 꼭 여러분의 마음 밭을 옥토로 관리하셔서 주님 기대에 부응해서 그야말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기를 바랍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