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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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예루살렘 성전을 본 제자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선생님, 이것 좀 보십시오! 굉장하잖습니까? 성전의 규모며 여기 사용된 돌들이며…! 갈릴리 촌구석에서만 살다 선생님 덕분에 예루살렘까지 와서 이렇게 성전을 보고있노라니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막 13:1). 지금 주님이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지도 모른채 제자들은 그렇게 예루살렘 성전의 장관에 얼이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이 받은 감동은 결국 이런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선망해 온 모든 것의 종합적인 실체가 바로 여기에 우뚝 서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까? 천년만년이 지나도 움쩍도 않을 이 견고한 성채야말로 우리 모두의 희망이겠지요!>
주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너희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막 13:2). 무슨 뜻일까요? <너희는 이 값비싼 돌 하나하나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강요되었는지를 생각해 봤느냐?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저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나 아느냐? 또 사람들의 희생 위에 군림하여 떵떵거리는 자들과 가난한 과부를 등쳐가며 유지되고 있는 저 성전의 위선과 흉악한 죄상을 알기라도 한단 말이냐?> 따라서 이것은 결코 너희가 선망하며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랬기에 주님은 그 웅장하고도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규정하셨고, 감히 <허물어 버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신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문제는 힘없는 가난한 자들을 밖으로 몰아냄으로써 <만민의 집>이 아니라 오직 그들만의 탐욕의 성채를 만들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막 13:2)는 혹독한 선고를 내리신 것인데 이는 곧 외양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이요, 성전 당국자들의 수작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라는 것이며, 높게 쌓아 올린 명성과 부와 견고한 교권의 밑바닥에 탐욕과 장삿속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멸시와 교만이 깔려있다면 그것은 기필코 무너져 마땅한 성전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다 무너뜨리기는 아까우니 몇 개만이라도 남겨 놓자가 아니라 깡그리 무너져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이 소생하게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들이 높이 쌓아 올린 그 어떤 탑도 결국은 다 바벨탑의 운명에 처해지고 말 것이라는 경고며, 저 으리으리한 대리석 하나하나가 실은 다 탐욕에 쩔은 인간의 흉악한 죄성을 드러낼 뿐이라는 고발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그늘진 뒤 안에서 한숨짓는 사람들과 소외되는 이웃들을 보지 못한다면 오늘 우리 역시도 예루살렘 성전 건물의 웅장함만 보며 감탄했던 제자들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은 어떤 지경에 빠지든 우리들의 성역만 크고 안락하게 지으면 그만이라는 허욕과 망상은 이제 철저하게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성채가 아니라 그것이 다 무너진 자리에 다시금 세워질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라는 사실도 깊이 깨달을 일입니다.
작년 3월 강남 사랑의교회의 2,100억 원짜리 메가 처치 착공을 신호탄으로 올해는 서울 시내 대형교회들의 신축 혹은 대대적인 개축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필요와 분수에 맞는 건물이 아니라 과시와 안주의 성채를 짓는 일에 앞다투어 뛰어드는 대형교회들의 허세와 만용에 기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