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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같을 지어다!(시편 129편)

풀과 같을 지어다!
시 129: 1-8
2011. 02. 18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당해 온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시입니다. 원수들이<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1절),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2절).
이렇게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한 것은 오랜 세월 <여러 차례> 계속된 핍박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들이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2절)고 합니다. 시인의 이런 고백은 지금도 역사와 현실 속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교회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는 늘 고난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등에 핍박의 고랑을 팠도다
<밭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3절).
교회의 고난은 늘 되풀이 되어 왔고,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처럼 이 시대 교회에도 고난이 넘칩니다. 핍박은 교회의 유업이며 선민의 깃발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대적과 공격을 쉼 없이 당했고, 또 그때마다 하나님의 권속들은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게 일어 결국 대통령이 하야한 애굽에서도 400년이 넘도록 압제 당했고, 광야를 유랑하면서도 적들의 사나운 공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싸움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를 이기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한 번도 정예군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째서 적들이 <나>를 이기지 못했을까요?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4절).
이스라엘의 등에는 압제의 골이 길게 패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매질당한 상처와 학대당한 아픔의 흔적이 고랑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교회는 늘 그렇게 시대 시대의 모진 채찍을 감내하며 주님과 동행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장차 당할 교회의 고난에 대한 예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대적들은 교회를 해코지 하기위한 수고를 결코 쉬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해치는 일에 관한 한 마귀보다 더 열심히 고랑을 파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쟁기에 맨 줄은 끊어졌습니다. 이는 곧 원수들의 압제의 수단이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해방된 것입니다. 핍박의 굴레에서 놓여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줄을 끊으신 겁니다. 하나님은 때로 택하신 백성들의 반역을 징계하시기 위해 이방을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징계가 끝나면 다시 그 이방을 벌하십니다.

지붕의 풀같이 마르게 하셨도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 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6절).
지붕의 풀은 금방 자라지만 또 쉽게 말라버립니다. 
따뜻해서 싹은 빨리 틔우지만 발육에 필요한 흙과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곧 시들어 말라 죽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박해하는 세력들의 운명도 그와 꼭 같습니다. 
그들의 형통은 그저 잠시 잠깐입니다. 올해도 고난을 각오하십시오. 
사방에서 무리들이 주의 몸 된 교회를 음해하고 성도들을 모욕하며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하신 그대로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사 반드시 지붕위의 풀같이 마르게 하실 것임을 확신하며 더욱 담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