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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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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Apple-style-span">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잦았습니다. 거기다 최악의 구제역까지 겹쳐 사람도 짐승도 만신창인데 그제 어제는 다시 강원 영동지방에 100년 만의 폭설까지…. 그러나 어느덧 입춘이 지났습니다. 남녘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거제도에는 이미 매화며 동백이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 농민들은 벌써 고로쇠 수액 채취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립니다.</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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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의 로마 제국은 지중해 일대와 소아시아, 오늘날의 유럽 전역을 식민지로 석권하면서 황제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만큼 외적인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곧 닥칠 자신의 죽음과 더욱 혹독해질 로마 제국의 박해를 예감하며 &lt;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gt;, &lt;이제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gt;(롬 13:11-12)고 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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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삶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만날 날이 가까워지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만날 날이 가까워지면 만났다 헤어질 날도 그만큼 가까워지므로 오히려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밤은 지나간 낮에서 보면 점점 더 깊어 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이나 내일을 기점으로 보면 그만큼 새날에 더 가까워진 것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내일을 기점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모든 것이 꽉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움이 짙은 것 같아도 그 흑암의 틈새로 비쳐오는 내일의 여명을 앞당겨 봄으로써 늘 새롭게 숨 쉬며 사는 족속들입니다. &lt;겨울이 왔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gt;한 셸리의 싯귀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어김없는 소망이요 신념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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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삶에는 예외없이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밤이나 겨울에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올겨울에도 이 땅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구제역을 비관해 음독한 농민이며 차 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집단으로 자살한 20대들, KAIST에 진학한 영재가 학업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기도 했고, 설 연휴 때는 대학진학에 실패한 수험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느 영화작가의 자살 소식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모두 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절망감 때문에 그런 극단한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이 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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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바울은 새벽을 확신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밤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내일을 적극 채비한다고 합니다. &lt;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gt;(롬 13:12,13)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헬레니즘 영역에서 성행하던 사회적 병폐를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그때는 누구나 스포츠에 열광했고 경기에서 이기기라도 하면 거리를 누비며 안하무인으로 소란을 피웠는데 그게 바로 방탕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술집으로 몰려가 먹고 마시며 호색하고 막되게 굴다 결국은 싸움판을 벌였는데 그게 거의 정례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사회적 악습을 지적하며 겨울에 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 스스로는 떨어 버릴 수 없는 낡은 잎들을 말끔히 날려버리듯 밤을 이용해 모든 때 묻은 것, 더럽고 추한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끄럼 없이 내일을 맞자고 합니다. 겨울에는 다 죽은 듯 앙상하던 나무도 봄이 되면 다시금 그 두꺼운 목피를 뚫고 기적과도 같은 새 생명의 움을 틔웁니다. 이제 우리도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저 남도에 상륙한 꽃소식을 들으며 서둘러 봄을 준비해야겠습니다.</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