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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6일 주일낮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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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고전 6:1-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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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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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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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지난주에는 우상의 제물 문제로 고린도 교회를 얘기했는데, 이번주도 고린도 교회 얘깁니다. 당시 고린도는 헬레니즘 문화가 절정을 이룬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당시 그들의 가치관을 지배하던 사상은 에피큐리즘입니다. 쾌락주의입니다.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맘모니즘입니다. 물질지상주의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 쾌락을 보장할 때만 진리라는 게 쾌락주의입니다. 그래서 일하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서 일했습니다. 철학도 그렇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인생이 뭐냐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철학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유희를 위해, 사변의 유희를 위해서 철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을 일컬어 소피스트라고 했습니다. 말쟁이들, 괴변가들이란 뜻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에피큐리즘에 반대하는 사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스토아주의입니다. 도덕주의, 금욕주의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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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바울은 이 양대 사상에 대항해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의 아테네 전도를 한 번 보십시오. 사도행전 17장 16절 이하입니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이게 바로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할 때의 장면입니다. 아고라 라는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는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를 주창한 철학자요, 스토아 철학도 나옵니다. 바울 당시를 지배하던 사상은 쾌락주의입니다. 모든 게 쾌락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철학도 그랬고 심지어는 스포츠도 그랬습니다. 이때는 스포츠가 운동이 아니라 게임이 되었습니다. 올림픽이 바로 그들이 만든 겁니다. 운동이 아니라 오락이 된 겁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쾌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 신전이 고린도에 있었습니다. 1000명이 넘는 여사제가 있었습니다. 비너스 신전에서 예배하는 것은 먹고 마시고 미녀 사제들과 즐기는 게 예배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항상 각국의 선원들이 들끓었습니다. 여사제들은 비너스 신전에서 몸을 파는 창녀였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비너스 신전에 가서 여사제를 만나 쾌락을 즐기고 돌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15-16절입니다.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6절의 창녀는 비너스 신전에 있던 여사제들을 가리킵니다. 이게 다 그들을 지배하던 쾌락주의의 산물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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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의를 세우고 인권을 옹호하여야 할 법정까지도 쾌락주의가 지배했습니다. 당시 재판은 아고라 라고 불리는 광장에서 행해졌는데, 다툼이 있는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방청객 중에서는 배심원을 선정하는데, 20명부터 6000명까지 동원했다고 합니다. 이건 재판이 아니라 게임이 된 겁니다. 배심원이 지지하는 쪽으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재판은 엄숙하지 않고 경기가 된 겁니다. 이런 문화속으로 기독교가 들어간 겁니다. 이런 문화가 만발한 고린도에 바울이 교회를 개척한 겁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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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교회 안에 알력이 발생했습니다. 교인들은 그것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쾌락 본의로 이루어지는 세상 법정에 고소한 겁니다. 이게 옳은 일입니까? 잘 한 일입니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 내부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가지고 가는 게 온당하냐는 겁니다. 요즘 한국 교회도 툭하면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 갑니다. 최근에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교회 안에도 치리기관이 있습니다. 개 교회에도 당회가 있습니다. 상회인 노회에도 재판국이 있고, 교단 총회에도 재판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승복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세속 법정으로 들고 갑니다. 남의 교단 이야기여서 죄송하지만,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지금 감리교단 사정을 보면 말이 아닙니다. 서로 자기가 감독회장이라고 합니다. 지난 2008년부터 3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감독회장 임기가 4년인데 3년간 저러고 있습니다. 끝이 안 보입니다. 2008년부터 40여회 서로 고발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교단장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 교단의 행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감리교단은 교단 총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17일에 법원이 감독회장 직무대행을 선임했는데,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인 어느 장로를 선임했습니다. 감독회장은 당연히 감리교회의 목사여야 하는데, 일개 법무법인 대표가 월급을 받으며 감독회장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독대행이 장로교회 장로입니다. 서울 사랑의교회 장로입니다. 장로교회 장로가 감리교회 감독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맹렬한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목사가 서로 상대를 맞고소 하면서 자격무효가처분을 냈습니다. 그야말로 진흙탕의 개싸움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교단 목사입니다. 여러분,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뭐라고 하며, 바울은 어떻게 권면합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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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오늘 본문을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 [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2]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이 아주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3]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교회 내부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 간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욕되게 했다는 사실도 큰 잘못이지만, 2절을 보니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합니다. 당시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것을 종말에 비유한 알레고리입니다. 이 세상 종말에 성도가 다 주님의 재판에서 배심원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 내부 문제로 세상 법정에 나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을 판단해야 하는데 교회가 자기를 심판해 달라고 세상 사람을 찾아갈 수 있느냐? 너희는 자존심도 없느냐? 너희가 그리스도인 고유의 동일성과 정체성을 알고 있느냐? 너무도 안타까운 책망 아닙니까?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그런데 바울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너무도 확고합니다. 우리가 천사도 심판할 터인데 어떻게 우리 문제를 세상 법정에 가지고 가느냐는 겁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세상 법정의 판결 이전에 교회가 교회 내부의 문제를 심판해 달라고 가져갔다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겁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여기서 ‘뚜렷한 허물’이란 말은 현저한 죄악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바울 사도의 호소를 귀담아 들으십시오. 무엇이라고 합니까?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겁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게 옳은 선택 아닙니까? 교회는 주님의 몸인데,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신데, 차라리 우리가 불의를 당하자는 겁니다. 차라리 속자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교회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자율성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장차 이 세상과 천사까지도 심판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얼마나 공허한 얘기입니까? 흔히 교단의 치리와 판정을 믿을 수 없고 승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게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성숙한 자율성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문제는 교회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의 분수에 맞는 일입니다. 새해는 한국 교회가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주님의 이름을 덜 욕되게 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좀 덜 웃음거리로 만드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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