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30m: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고전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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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0일 주일낮예배
본문: 고전 8:1-13
제목: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본문 마지막 절입니다.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채식주의자였습니까? 밀림의 성자로 잘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도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슈바이처가 채식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어릴 때 동네에서 놀다가 한 아이랑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슈바이처 아래에 깔렸는데, 깔린 아이가 말하기를, 나도 너처럼 날마다 고기를 먹으면 너한테 안 진다고 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슈바이처는 그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자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만에 하나 자기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다면 차라리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겁니다.
금주가 설 주간입니다. 올해도 역시 제사 문제 때문에 고민하거나 힘들어 하는 가정이 없지 않을텐데,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도 바로 이 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겪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우상의 제상에서 물린 음식을 떳떳이 먹는 파가 있었고, 절대 제사음식을 안 먹는 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파가 늘 싸웠습니다. 먹는 파는 먹지 않는다고 유치하다고 비난했고, 안 먹는 파는 먹는 파가 사이비라고 욕했습니다. 고린도는 지금도 그리스의 큰 항구 도시입니다. 수도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7-80km 떨어진 큰 항구 도시입니다. 바울 시대 때는 그리스 최대의 무역항이었습니다. 언제나 외국 상선이 많았고, 항구 특유의 우상숭배도 극심했습니다. 고린도에는 비너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코린트 양식이 바로 비너스 신전 양식을 말합니다. 한 때 거기에는 1,000명이 넘는 미녀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고린도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나오는 고기는 다 제사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 사람 중 일부는 그 음식을 먹었고, 일부 사람은 제사음식이라고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갈등이 발생한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혹 이웃에서 고사 지내고 음복한다고 가지고 오는 수가 있는데, 그거 기도하면서 드십니까?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리십니까? 고린도 교회의 경우는 그게 우상의 제물인 줄 알면서도 부담 없이 먹는 층은 지식인 층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은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없다는 겁니다. 무지한 인생이 없는 신을 있는 것처럼 섬겨서 그렇지 사실 신은 한 분 뿐이라는 겁니다. 4절입니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따라서 있지도 않은 우상 때문에 먹고 마시는 데 제약을 받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바울도 그 주장이 맞다고 합니다. 그러나 2절을 보면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그렇다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모든 사람이 다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이는 어쩌다 모르고 제사음식을 먹었을 경우 그것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리낌 없이 음식을 먹어도 아직은 약한 형제를 실족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3절과 11절을 보면 너희의 지식 때문에 약한 자들이 넘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 절에서 내가 고기를 먹음으로 형제가 실족한다면 내 스스로 내 자유를 제한해서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시험 드는 사람을 위해 내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유만 즐길 줄 알았지, 배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미치는 겁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했습니다. 우상의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제사상 앞에 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믿음 약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자기의 권한과 자유를 제한해야 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이게 덕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신앙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드러내놓고 음주와 흡연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 문제는 우리 한국 교회가 오랜 세월 금기시 해왔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고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제를 배려하지 않은 죄가 됩니다. 이게 바울의 논리입니다. 12절입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이 부분에 약합니다. 남이 나보고 다치는 것은 남의 사정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 권한과 자유라 해도 내가 나의 자유와 권한을 행사했을 때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성경은 먹을 수 있는 내 자유, 누릴 수 있는 내 권리보다 형제의 유익과 이웃의 덕을 먼저 고려하라고 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래서 제가 아직 담배를 못 끊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피우시되 몰래 피라고 하는 겁니다. 남을 해치지 말고 은밀히 피우라는 겁니다. 이것은 비겁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배려입니다. 전에 캐나다 선교사 한 분이 한국에 와서 모 신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분이 개인적으로 한국 교회에 적응하기가 가장 힘들었던 게 주초 문제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 문화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술은 저녁에 즐기더라도 담배는 낮에도 피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분이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운 겁니다. 그런데 신학생들이 눈치 못 챌 리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분이 3달 만에 쫓겨났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흥분했던 게 치사하게 숨어서 피웠다는 겁니다. 선교사는 그게 아니라 남을 위한 배려였는데 말입니다. 선교사는 본국에서는 그게 문제될 게 없고, 우리에게 문제가 되니까 숨어서 한 건데, 결국 쫓겨났습니다. 여러분, 늘 이웃을 생각하십시오. 형제를 배려하십시오. 이게 주님의 가르침이고, 바울의 당부입니다. 제사문제, 그 음식문제를 그런 차원에서 숙고하십시오. 주초 문제도 이점을 염두에 두시고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으로 갑니다. 23-24절입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랑과 덕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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