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109n: 두려움(딤후 1:7-8)

2011년 1월 9일 주일오후예배
딤후: 딤후 1:7-8
제목: 두려움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키텔(Kittel) 이라는 유명한 성서사전이 있는데 거기에 의하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약 360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1년 365일 동안 두려워말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제자를 세상에 내보내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 내보내는 것 같으나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두려운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이리들의 소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만만치 않습니다. 각종 질병, 실직,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향해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인 욥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두려움입니다. 욥은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욥의 약점을 타겟으로 그를 시험했습니다. 욥이 가진 두려움은 내 자녀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부자인 욥이 재산과 건강을 잃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그가 누리던 행복이 박살났습니다. 그가 늘 두려워하던 그것이 고스란히 그의 삶에 임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본문을 보면 두려움은 절대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준 게 아니라면 누가 준 겁니까? 마귀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몰래 우리 안에 뿌리고 간 가라지 같은 정서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며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는 불신앙이면서 마귀와 수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귀의 기대에 내가 부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자는 훗날 심판받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 아셨습니까? 두려워하는 자는 훗날 심판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이기고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안의 이 두려움을 물리치며 몰아낼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 대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처방은 무엇입니까?

첫째, 능력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능력은 당연히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말로 <듀나미스>라고 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입니다. 성령의 가공할 파괴력을 가리킵니다. 이게 본문이 말씀하는 능력입니다. 마귀가 주는 두려움이 제 아무리 위협적이라 해도 성령의 다이너마이트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나의 능력과 담력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는 분명히 우리 안의 두려움을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처음에는 두려워서 다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락방에서 오순절을 기해 성령을 받자 성령의 듀나미스로 충만해서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그들에게 위협적인데, 변한 게 없는데, 그들은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며 다녔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했기에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살려고 빌다가 죽은 게 아니라 기꺼이 죽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내 가슴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사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었겠습니까?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써 여러분의 가슴속에 있는 두려움을 날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올해도 용감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보면,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고 극복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적 앞에서도 떨지 않습니다. 

사랑이 어째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게 할까요? 사랑은 빛이고 두려움은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방안이 어둡더라도 불을 밝히면 그 어둠이 사라지듯 우리 안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어도 우리 안에 사랑으로 충만하며 두려움이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움 속에 산다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능력도 사랑도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어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인 사랑이 어둠을 몰아내고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올해도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충일하십시오. 

셋째,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절제하는 마음은 근신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은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깨어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내 마음이 무방비로 풀려있거나 졸거나 자고 있기에 약해져서 두려운 것입니다. 깨어 근신하고 절제하면, 항상 긴장하면 절대 두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군대의 전력이 가장 약할 때가 군인정신이 해이해 졌을 때입니다. 그러나 근신해 있으면 그 군대는 최강의 군대입니다. 우리가 왜 마귀의 공격을 무방비로 당합니까? 우리가 긴장을 풀고 있어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사로서 절제하며 근신한다면 마귀가 범접할 수 없습니다. 군인이 두려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압이 빠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고, 사랑도 없고, 늘 긴장을 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지금 믿는 자라도 삼키겠다는 야욕으로 두루 다니는데 우리는 해이해 져서 졸거나 자고 있으면 영락없는 마귀의 타겟이 되고 맙니다. 부디 근신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늘 깨어 계십시오. 그래서 2011년을 근신하며 사십시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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