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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이 강성하고 자손이 복 받으려면(시편 112편)

후손이 강성하고 자손이 복 받으려면
시 112:1-10
2011.01.08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해야>(1절)합니다.
시편 1편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2절)가 복되고,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3절)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즐거워함>이란 결코 심정적인 <즐거움>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실행할 때 느끼는 실천적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정직한 자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2절).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4절).
요즘도 과연 정직한 자가 있을까요?
<정직이 밥 먹여 주냐?>가 이 시대 모든 이들의 냉소적 반문아닙니까?
부정직하고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돈만 많이 벌면 되고, 돈만 많으면 모든 게 다 정당화 되고 다 수습된다고 생각하는 게 이 시대의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인식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의 부정직과 불의의 문제는 결코 당대나 이생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내용을 심판하사 반드시 그 다음 세대, 혹은 후손들에게 그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본인의 영원한 운명에도 반영하십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내 자녀가 잘 되고, 내가 뿌린 씨앗에서 내 후손들이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수확하길 바란다면 내 당대 부지런히 정직과 정의를 심고 뿌려야 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5절).
여기서 <은혜를 베푼다>는 말씀은 너그럽고, 관대하고, 용서하고, 포용한다는 뜻입니다.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주님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27-31)고 하셨습니다. 늘 은혜를 베풀며 살라는 당부십니다.
믿는 자들조차도 점점 더 각박해지고 무정해지고 비정해져 가는 현실이 몹시도 안타까운 요즘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용서하지 않고 포용하지 않습니다.
가차없이 보복하고, 되로 받고 말로 갚습니다.
모두가 적이고, 모두에게 각을 세우며, 용서란 곧 약자의 비굴이고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자의 자손이나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수확할 의의 열매가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내가 다 갚았고, 보복했고, 뿌린 것 이상으로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구제하는 자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9절).
내 수중의 부와 재물은 빈궁한 자들을 구제하고 자선하고 기부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런 철저한 청지기 의식 없이 나 홀로 즐기고 나 홀로 먹고 마시며 은행에 쌓아 두는 자는 훗날 그 부에 대해 반드시 심판받습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배반했기 때문이요, 관리자가 소유자 행세를 하며 월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주어진 부로 자선하고 구제하고 기부하는 자는 당대뿐 아니라 그 자손과 후손들이 강성하고 영구합니다. 사실 돈은 구제하고 기부하면 한 만큼 손실이 발생합니다. 누구나 그게 두려워 기부하지 못합니다. 그거나 그것은 산술적인 손실일 뿐 축복의 법칙으로 보면 도리어 감히 계산할 수 없는, 수적으로는 셈할 수 없는 덕이 되고 무한한 이익이 발생합니다. 올해는 자선하고 구제하고 기부하며 삽시다.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귑시다>(눅16:9).
그게 바로 내가 잘 되고 내 자녀들과 후손들이 강성해지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