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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5일 성탄축하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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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마 1:22-23</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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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임마누엘</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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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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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무한한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빕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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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사상도 많고 철학도 이념도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도의 종교입니다. 득도의 종교, 고행의 종교, 참선의 종교, 윤리와 도덕의 종교입니다. 고행과 자선, 참선, 요가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도(道)에 이르자는 겁니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의 종교나 철학은 상향식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입니다. 도를 깨닫는 경지에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철저히 상향식입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옛 소련의 가가린이 돌아와서 한 말이 ‘우주에 나가봤더니 어디에도 신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행과 순례를 해도, 도를 닦아도 이 우주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상향식의 종교로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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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기독교는 임마누엘의 종교입니다. 성육신의 종교입니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하향식 종교입니다. 우리가 찾아 헤매서 만난 케이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인간의 해후가 성사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을 찾을 길은 없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함께 계시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성탄(聖誕)입니다. 주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게 성탄입니다. 주님이 사람 되신 사건이 성육신이고, 성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에 계시지 않고 초월세계에 계십니다. 물리적인 우주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저 우주에 나가봐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가가린 말이 맞습니다.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십니다. 초자연적인 세계에 계십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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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야곱의 사다리 아시지요? 야곱의 사다리는 어떤 사다리입니까? 야곱이 외롭고 무서워 지상에 사다리를 세우고 하나님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사다리를 내리시고 무서워하고 고독해하는 야곱을 찾아오신 게 바로 야곱의 사다리 사건입니다. 사다리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고, 성탄이며, 성육신이고, 임마누엘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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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자기를 비하하셨을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차원에 계시고, 인간은 차원에 갇혀 있는 한 이 둘의 해후는 없습니다. 서로 존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소통하려면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하늘이라는 세계에 계시고 우리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유한한 세계에 갇혀 있는 한 양자의 만남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만나지 않고서는 대화할 수 없습니다. 교감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셨습니다.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위치로 스스로 비하하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신 겁니다. 이것이 성육신 사건이며, 오늘 새벽에 이루어진 성탄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주님이 우리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신 겁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교통, 사귐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지금도 우리를 격려하시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주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사람이 되셨기에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며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개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존재의 차원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가 되든가, 개가 사람이 되어야만 대화가 됩니다. 우리 개는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반사훈련이 잘 된 겁니다. 존재가 다르기에 서로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주님이 사람이 되신 것도 우리와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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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성탄의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데 어떻게 되셨다구요? 남자의 아들로 오시지 않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남자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주님만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주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고 시작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로 이어집니다. 모두 아비가 자식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유다와 그 형제를 낳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그 다음에 이어지려면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가 되어야 하는데,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합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남자의 후손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구약이 여러 차례 예언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이 뱀을 저주하시는 대목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미 여기에서부터 주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온다는 사실을 예언한 겁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약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을 마태복음이 인용한 대목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730년 전에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주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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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왜 주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까? 왜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로 오셨습니까? 사실상 주님만 이렇게 오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다 아담의 후손인데 주님만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왜냐면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의 유전인자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의 후손으로 오셨다면 주님도 어쩔 수 없이 원죄를 쓰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유전질서를 피하기 위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온 겁니다. 그래서 주님만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후예들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고, 그래서 죄를 숙명적으로 지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후예는 원죄와 자범죄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은 원조의 유전질서와 상관없이 오셨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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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왜 주님이 이렇게 오셨을까요?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아시지요? 제물은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 가운데 백성이 가져온 제물을 꼼꼼히 살피는 일입니다. 죄가 없어야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흠과 티가 없이 오셨습니다. 원죄와 자범죄 없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도 원죄를 쓰고 태어났다면 우리를 속죄하실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주님은 물에 빠지지 않았고, 소경이 아니었기에 우리를 물에서 구할 수 있었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성씨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낳은 아버지의 성을 따라갑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우리는 조상이 아담이 죄씨였기에 태어날 때부터 다 죄씨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일하게 마씨입니다.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되시는 겁니다. 하늘에 계셔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죄 없는 순결한 대속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성탄하셨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부디 주님의 무한하신 성탄의 은총과 신비를 깊이 이해하시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이 얼마나 가이없는 하나님의 사랑인지를 실감하시고 감사하시길 빕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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