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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9일 주일낮예배/대강절 넷째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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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눅 2:8-14</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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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성탄의 표적</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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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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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금주 토요일이 성탄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10년 전의 첫 성탄은 외양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외양간은 짐승들의 처소입니다. 그런 외양간이 첫 성탄의 현장이었습니다. 왜 주님이 외양간에서 탄생하셨을까요? 당시 사람들이 주님이 태어나실 방 한 칸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하고 비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춥고 어둡던 외양간도 주님이 성탄하시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럽고 풍성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두루 비치고, 천군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퍼지고, 별들이 그 외양간 위에서 아름다운 빛을 뿌리고, 목자들이 찾아와 경배하고,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며 경배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초라했던 자리가 주님의 성탄으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자리로 변화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올해도 금주 말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새롭게 모시면 여러분의 심령도 가정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탄을 고대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쓸쓸하고 슬퍼도 성탄하실 주님을 모시면 주님의 영광의 빛이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충만해집니다. 천군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며 모든 어두운 기운들이 여러분의 가정과 심령에서 물러갑니다. 그런 변화와 성탄의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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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들에서 밤을 새워가며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최초로 성탄의 소식을 전합니다. 11절 이하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무슨 표적입니까? 그가 바로 구주라는 표적입니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증거라는 겁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라는 사실, 구유를 요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메시아의 증거라는 겁니다. 그 아기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물증이라는 겁니다. 빨리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경배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강보에 싸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유로 오셨습니다. 구유를 요람 삼아 오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그의 그리스도 되심의 표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점을 오늘 확인해 보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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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먼저 강보에 싸인 아기입니다. 왜 주님이 아기로 오셨습니까? 유대는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입니다. 어린 아이나 아기들은 인간에 끼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메시아라고 해도 어린 아이로 와서는 별 볼일 없는 사회가 당시 유대 사회였습니다. 철저히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그리스도라면 성인으로 나타나셔야 합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30세에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아기로 오셨더라도 신비주의로 계시다가 공생애 시작하실 때 짠 하며 나타나셨다면 통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시면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공개하셨습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겸손의 본체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입은 분입니다. 사람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사람 중에서도 가장 낮은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겸손하지 아니하면 절대 성탄하신 주님을 뵐 수 없습니다. 실제 아기 예수로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고 적대했던 세력은 헤롯 왕,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다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권위주의의 상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했기 때문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를 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적대했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했던 목자들을 보십시오. 동방박사들을 보십시오. 겸손해야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만이 이 세상에서 낮은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을 적대할 지언정 영접하지 못합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성도의 으뜸가는 미덕이 겸손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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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주님이 아기로 오신 것은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부터 아담처럼 30세된 청년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셨더라면 주님도 폼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차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겪고 당하는 삶의 애환을 그대로 겪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픔을, 억울함을, 눈물이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선구자이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기도하고 호소하고 탄원하면 주님은 우리의 처지와 심정을 깊이 공감하시며 다 들어주십니다. 왜요? 우리처럼 똑같이 갓난아기로 태어나 한 많고 아픔 많은 세상을 그대로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깊이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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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두 번째 표적은 구유입니다. 주님이 구유에 누이셨다는 사실이 그분의 구주되심의 또 하나의 물증입니다. 왜 구유로 오신 사건이 그분의 그리스도 되심의 표적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요 비천한 자리인 구유로 오시지 않았던들 절대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 주님을 뵐 수 있었겠습니까? 외양간은 문턱이 없습니다. 거기는 가난해서 비천해서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주님이 귀족의 대 저택이나 궁궐에서 태어났다면 목자들이 거기로 접근할 수 있었겠습니까? 너무 가진 게 많고 교만해서 주님을 못 뵐 사람은 많아도 너무 가진 게 없어서 주님을 뵐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중 아무리 가난해도 외양간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외양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분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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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가끔 돈이 없어 예수 못 믿는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돈이 있어야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현실 교회는 분명 그런 일이 없지 않습니다만, 근본적으로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주님을 뵐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위화감을 준다면 거기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외양간에 계십니다. 원래는 없던 문턱을 인간들이 사악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조작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분이십니다. 아무리 낮고 비천하고 가진 게 없어도 누구도 오라는 뜻으로 외양간에 태어나셨습니다. 포근하고 따뜻한 요람이 아니라 구유에 오신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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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주님이 구유에 오신 것은 또 하나 더 깊은 계시의 뜻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을 처음 뵙고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의 희생양으로 오신 겁니다. 이것이 주님의 정체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존재의 비밀입니다. 주님은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유로 오신 것이고 외양간에서 나신 겁니다. 양이 궁궐에서 태어날 일이 있습니까? 제 분수에 맞게 오신 겁니다.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제자인 가룟 유다가 배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위해 희생되실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고 한 겁니다. 주님은 본의 아닌 곳으로 오신 게 아니라 제대로 오신 겁니다. 여러분, 주님의 외양간 탄생은 절대 감상적이거나 목가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보다 깊은 구속사적 계시가 있습니다. 주님의 외양간 성탄은 이미 주님의 희생양으로서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외양간 탄생에서, 주님의 구유로 오심 속에서 이미 그의 운명을 읽어야 합니다. 주님의 최후 운명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희생 양으로 돌아가실 그분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유에 누이신 주님의 성탄이 이미 어린 양으로서의 죽음임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을 보실 수 있어야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시는 겁니다. 성탄의 은혜와 어린양의 무한한 대속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 올해도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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