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커피 가운데 <슈만과 클라라>가 있습니다. 경주에 <슈만과 클라라>라는 핸드드립 커피하우스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마셔 본 적이 없는데, 독일 라인지방의 카페 메뉴에는 꼭 등장하는 초콜릿 향의 파푸아뉴기니산 커피입니다.

슈만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대로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입니다. 그의 아내 클라라 또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젊은 천재 음악가 브람스가 등장합니다.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며 후계자로 키우는데, 브람스는 클라라를 동경하고 사랑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냅니다.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의 이런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 이게 영화(클라라)로 만들어졌습니다. 세 거장의 삼각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면야 우리나라의 막장 드라마처럼 흔한 치정사에 불과했겠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사랑이 음악을 배신하지도, 음악이 사랑을 모욕하지도 않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화려하거나 극적인 연출은 없지만 기대이상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흔치 않은 독일어 대사여서 제겐 더욱 반갑고 편했습니다. 어쨌든 슈만 200주년이라는 올해도 어울리지만 성탄의 계절인 이 12월에도 썩 잘 어울리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독일인들은 지금도 클라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엄격하게 제한되던 19세기, 뛰어난 재능으로 유일한 여성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슈만과 브람스라는 두 위대한 음악가와 나눈 애틋한 사랑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멸의 로맨스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화폐 중 최고액권인 5만원권의 모델이 신사임당이라면 얼마 전까지 사용된 독일의 마르크화 중 고액권에 속하는 100마르크 지폐의 모델은 바로 클라라였습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살고 싶다던 브람스는 클라라를 사모하면서도 나대지 않고 선을 넘지 않는 절제와 신의로 끝까지 클라라를 돕고 그녀의 곁을 지킵니다. 슈만이 죽은 후 결국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다 승계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와 무한한 배려의 결과였습니다. 클라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두 남자 사이의 여인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의 인생을 망치는 캐릭터이기 십상인데 그녀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품과 열정과 정절로 평생 살인적인 두통에 시달린 슈만을 헌신적으로 내조하며 사랑했습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슈만의 <라인교향곡>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선율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 

슈만은 슈만답고, 브람스는 브람스답고, 클라라는 클라라답다는 것, 그래서 세 사람 중 누구도 음악과 사랑에 있어서 패자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영화를 만든 여류감독 헬마 샌더스 브람스는 실제 브람스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만을 가슴에 품은 채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브람스 숙부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고증에 충실하여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영화는 슈만이 죽은 후 클라라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뒤셀도르프 시립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오직 클라라만을 위해 작곡했다는 그 두 사람의 정신적 사랑의 결정체를 클라라가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동안 스크린에는 마지막 나레이션 자막이 뜨는데 그러나 아직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십시오. 클라라의 연주를 지켜보는 말릭 지디(브람스 역)의 표정 연기를 끝까지 보지 않으면 그 영화를 안 본 거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