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2m: 마른 뼈들아!(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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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주일낮예배/대강절 셋째주일/성서주일
본문: 겔 37:1-10
제목: 마른 뼈들아!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온 국민이 놀랐습니다. 연평도 주민이 뭍으로 피난 나오고,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군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군대를 믿고 어떻게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를 우려하셨을 줄 압니다. 그래서 대통령도 책임을 물어 신속히 국방부 장관도 교체하고 서해 5도를 요새화하고, 교전수칙도 전면 수정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군도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교전수칙에 연연하지 않고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 대응하겠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기대하며 지켜 볼 일입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도 다 군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다 근신하고 있습니까? 다 깨어 있어서 언제고 출동할 태세가 되어 있습니까? 지휘관인 목사부터 사병들인 일반 성도까지 깨어서 언제든지 적의 도발에 대응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정태 집사님이 부친상을 당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고창에 문상을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노창순 집사님께 들은 얘깁니다. 어느 날 목사와 총알택시 기사가 나란히 죽었는데, 뜻밖에도 목사는 지옥가고, 총알택시 기사는 천국 갔다고 합니다. 왜냐면 목사는 멀쩡하던 사람도 설교만 들으면 졸게 하고, 총알택시 기사는 졸던 사람도 깨어있게 하니까 천국 갔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할 때마다 조는 할머니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서 작심하고 설교시간에 왜 조느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날도 열심히 졸던 할머니가 목사님이 이 자리에 앉아서 그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안 졸리나 …. 그래서 저는 누가 졸아도 절대 아는 체하지 않고 못 본 체 합니다. 오히려 설교를 살살 합니다. 나라의 군대도 그리스도의 군대인 우리도 다 졸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군인들은 혹독한 얼차려로 군기를 잡으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이 성서주일입니다. 바로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에스겔서를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에스겔을 어느 골짜기로 데려 가셨습니다. 에스겔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깊은 골짜기가 다 사람의 뼈로 가득했습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마른 뼈들이 누구입니까? 1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아닌 게 아니라 에스겔이 본 뼈들은 당시 바벨론에 잡혀가서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내일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골짜기에 흩어져있는 마른뼈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를 더욱 당혹케 한 것은 이어지는 하나님의 물음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금방 숨을 거둔 것도 아니고 백골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살아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에스겔은 난처했습니다. 예 하자니 자신이 없고 아니오 하자니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 같아서,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처방이 있었습니다. 어떤 처방을 내리셨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4절입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러분, 골짜기 가득한 마른 뼈도 얼마든지 다시 살 수 있습니다. 하얗게 마른 뼈들에게도 얼마든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뼈들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7절이하입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이게 바로 하나님 말씀의 생생한 위력입니다. 에스겔로서도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주께서 아신다고 했는데, 실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까 그 마른 뼈들이 서로 움직여 맞아 들어가 결국은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 가죽이 덮이더라는 겁니다. 말씀이 마른 뼈들을 소생하게 합니다. 주님도 죽어서 무덤에 장사된 사람을 되살려 내셨습니다. 주님의 친구 나사로는 이미 죽어 썩어 냄새가 나는데 그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며 시체를 불러냈습니다. 나사로가 되살아 나왔습니다. 시체도 마른 백골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되살아납니다. 그럴 수 있다는 생생한 사실을 하나님이 에스겔로 하여금 친히 목격하게 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세계를 창조한 말씀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고 완전하게 말입니다. 말씀으로 안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너희가 살리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말씀은 그 어떤 시체도 마른 뼈도 다 살려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살리라.’ 옳습니다. 의사가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뼈들이 움직이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입니다. 말씀이 비법이요 해법입니다. 18세기 영국 사회는 한마디로 개판이었습니다. 희망이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술주정꾼, 깡패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때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가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박꾼, 마약꾼이 앞다투어 회개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대영 제국이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비틀어진 뼈들을 다 되살린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희망이 안 보이십니까? 70년간 바벨론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만큼이나 절망적이십니까? 골짜기에 쌓인 마른 뼈들처럼 암담하십니까? 이제라도 말씀을 들으십시오. 반드시 되살아납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37장 12절 하반절입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지금 바벨론에서 무덤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덤 같은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서 힘 있는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야 합니다. 5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여기 나오는 생기는 히브리말로는 <루아흐> 입니다. 성령입니다. 14절을 보면 “내 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과 어휘나 뜻이 똑같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골짜기 가득 흩어진 마른 뼈들도 다 하나님의 위대한 군대가 됩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생기이기에 성령이 충만하면 마른 뼈들도 막강한 위용의 하나님의 군대가 됩니다. 10절입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말씀을 듣고 또 성령이 역사하면 마른 뼈들이 다 살아나서 엄청난 여호와의 군대로 재편됩니다. 반면에 성령이 없는 자는 아직 산 자가 아닙니다. 기억하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당신의 생기, 곧 루아흐를 불어 넣자 산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없으면 나는 흙덩이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리면, 살았다고는 하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우리가 뛸 수 있습니다.
늘 생기발랄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의 군사로 담대하고 씩씩하게 생활하기를 바라십니까?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충만, 다음엔 성령충만입니다. 정말 우리 사회가 새로워지기를 바라십니까? 역동적인 사회, 힘 있는 군대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성령충만하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누가 뭐래도 말씀과 성령이 해법입니다. 지금은 비록 마른 뼈들처럼 무력한 존재이지만 우리에게 말씀이 임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가면 우리가 다 살아 역동하는 여호와의 군대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 사회가 바뀝니다. 정말 우리 군대가 막강한 위용의 국군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시고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선 나부터 말씀충만, 성령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내 자신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와 사회가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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