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1121n: 열 명 중 한 명(눅 17:11-19)

2010년 11월 21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눅 17:11-19
제목: 열 명 중 한 명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의 초점은 열 명의 나병환자가 주님을 뵙고 치유함을 받은 기적에 있지 않습니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열 명의 환자 가운데서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이 본문의 초점입니다. 사실 이 얘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대로 극명한 오늘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분명히 열 명이 고침을 받았는데 겨우 한 명만 주님께 감사한다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가다 말고 되돌아와 주님께 감사한 이 사마리아인의 나환자의 감사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감사야말로 우리 삶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당시 나병환자들은 성 중에 살지 못하고 성 밖에서 나병환자들끼리 모여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병이 나은 경우엔 반드시 제사장의 공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주님이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직 병이 나은 게 아닌데, 주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로 찾아가는 겁니다. 가는 도중에 병이 나았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해짐을 느낀 열 명의 사람 중 되돌아와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 명 사마리아인 나병환자였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아홉은 무슨 생각을 하며 가던 길을 그냥 갔을까요? 고맙긴 하지만 지금 당장에 돌아가서 감사해야 할까? 다음에 하지. 정말 주님의 은혜로 내가 깨끗해 졌을까? 나을 때가 되었으니 나았겠지. 지금은 어차피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했으니 제사장 먼저 만나고 또 그리운 가족 먼저 보고 주님을 뵈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아전인수식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잘못된 겁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의 최우선 과제는 가던 길을 되돌아가 주님께 감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가르칩니까? 첫 열매, 첫 새끼, 첫 아들로 감사하라는 겁니다. 제일 먼저 주님께 감사부터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첫 수입, 첫 곡식, 첫 새끼, 첫 날, 장자를 바치는 겁니다. 여러분, 은혜를 입으셨으면 만사 제치고 감사부터 하십시오. 감사가 우리 삶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 중 영순위입니다. 되돌아와서 감사한 사람도 왜 빨리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감사가 은혜 입은 자의 우선적인 과제이니까 감사부터 한 겁니다. 감사를 미루지 마십시오. 감격이 사라지기 전에 감사부터 하십시오. 

다음은 감사는 늘 외로운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소신대로 살기보다는 유행 따라 삽니다. 소신대로 살면 피곤하며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별종이라는 손가락질도 당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하는 대로 하면 중간은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 타협하고 적응하는 걸 미덕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 도리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거나 계산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돌아와 주님 앞에 엎드린 겁니다. 열 명 가운데서 아홉 명이 앞으로 가는데 한 사람이 방향을 되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는 절대 다수결이 아닙니다. 아홉이 다 배은망덕해도 나 혼자만이라도 돌아가서 감사하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감사생활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냥 남처럼 살고 믿지 하는 게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열 명 중 한 명만 감사한 겁니다. 1/10만 감사한 것은 결국 우리의 현실입니다. 적당하게 섞여 살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주님께 감사한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도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홀로 되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님은 ‘열 명이 다 나았는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좀처럼 섭섭한 내색을 안 하시는데, 해도 너무 했다는 겁니다. 그 저주 받은 삶에서 열 명이 다 나았는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는 겁니다. 감사는 결코 쉬운 삶이 아니라 고독한 행위지만 반드시 필요합니다. 감사는 은혜 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도 소중하지만 그 은혜에 대한 감사도 더욱 소중합니다.

감사가 곧 예배입니다. 16절입니다.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유대 전통에서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 개념으로는 인사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예배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감사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복에 대한 응답입니다. 감사는 예배로 표현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예물을 바칩니다. 예물도 예배의 한 일부입니다. 예배다 보다 완전한 감사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설교도 기도도 아니고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대해 늘 예배로 응답해야 합니다. 예배로 하나님께 메아리를 보내야 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많은 보람을 느끼십니다. 헌금 몇 푼으로 내 감사를 다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하는 이의 모델입니다. 주님께 예물로 감사를 떼우지 않고 엎드려 경배한 겁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감사가 어떤 결과를 빚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18절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1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감사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보람을 느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은혜와 복을 베푸셔도 우리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와 예배했더니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감사를 예배로 표현하십시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과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면 그 이상의 복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복을 주어도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마냥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배은망덕하니까 더 이상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19절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는 더 위대한 은혜를 부릅니다.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다고 주님이 선언하신 겁니다. 감사를 유보하고 제 갈 길을 간 사람은 육신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만은 너의 믿음이 너의 육신뿐 아니라 너의 영혼도 구했다고 합니다. 감사하십시오. 반드시 더욱 큰 은혜와 구원과 복을 받습니다. 사마리아 사람 나병환자의 복과 은혜에서 깨달음을 얻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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