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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1m: 감사의 합창(시 136:10-26) 추수감사주일

2010년 11월 21일 주일낮예배/추수감사주일
본문: 시 136:10-26
제목: 감사의 합창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편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3대 절기 때 빠트리지 않고 꼭 불렀던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우선 초실절, 오순절,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맥추감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유월절, 마지막으로 추수감사절과 같은 장막절, 초막절입니다. 이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불렀던 찬송이 시편 136편입니다. 구약 때도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인 성가대가 부르지 않고 시편 136편만큼은 제사장과 온 백성이 함께 불렀습니다. 제사장이 예배를 집행하는 앞 소절을 선창하면 백성들은 후렴구를 제창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불렀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처럼 그렇게 본문을 제창하겠습니다. 시편 136편은 1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다 감사하라는 말씀이 한 절도 빠짐없이 나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날마다 순간마다 호흡마다 평생 감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한 절도 빠트리지 말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우선 출애굽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이하를 보십시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것은 다 출애굽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감사해야 할 감사의 우선순위 제1호는 출애굽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도 다 출애굽한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출애굽에 대해 기념하고 감사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출애굽은 유월절 때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복이 출애굽입니다. 출애굽을 잊고 살면 배은망덕한 삶입니다. 이스라엘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인도해 내십니다. 바로가 그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장자를 치니까 바로가 비로소 손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장자뿐 아니라 짐승의 장자도 죽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없어서 극적인 출애굽을 허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로 나와 자유인이 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 출애굽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어디서 어떻게 하며 살겠습니까? 여전히 세상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살겠지요.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겠지요. 마귀의 하수인으로 살고 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물론 고단한 광야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망각하면 불효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피가 칠해진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갔다 해서 유월입니다. 우리가 출애굽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피가 우리에게 칠해진 겁니다. 어린양이신 주님의 피가 아니면 우리는 구출 받지 못했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는 절대 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성에 젖고 내성이 생겨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주님의 피로 우리가 놓임을 받았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이 은혜에 감사하며 이 세상을 떠납시다. 

다음은 기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매우 원초적인 하나님의 복입니다. 17절이하입니다. “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사람들은 다 가나안 원주민들의 왕이었습니다. 이들을 제압했기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21-22절입니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 나오는 기업은 중소기업, 대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라는 하나님의 유업, 기업의 희망으로 40년 광야생활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유업, 기업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년만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광야생활이 끝나면 천국으로 갑니다. 이게 우리의 기업입니다.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의외로 천국의 유업에 대해 무덤덤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별 감동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분도 있습니다. 오래 된 얘기입니다. 제가 어떤 세미나에 갔는데 모 교회 장로라는 분이 천국가기 위해 예수 믿느냐며 발제자를 비웃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은 왜 예수 믿느냐고 여쭤봤더니 자기는 보람된 삶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생활을 위해 예수 믿는다는 겁니다. 제가 직언을 했습니다. 실례지만 어떻게 장로가 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장로님이 한참 틀렸습니다. 보람된 삶이니 의미 있는 생활이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기독교는 천국가자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을 빼면 김빠진 맥주입니다. 다른 것은 다 부수적인 겁니다. 고상한 삶을 위해서라면 백화점 문화교실을 찾아가면 됩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이 길길이 뛰면서 흥분하고 나중엔 제게 인신공격까지 했습니다. 교회는 천국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고상한 소리에 속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천국을 위해 예수 믿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천국을 팔지 마십시오. 천국을 걸고, 영원한 운명을 걸고 도박하지 마십시오. 척 보면 압니다. 과연 저 사람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없는지 말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신앙생활 자체에 힘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기업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없는데 무슨 낙으로 신앙생활 하겠습니까? 부디 가나안에 대한 확신과 감격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발적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감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일용할 양식에 대해 감사하라고 합니다. 25절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출애굽에 대해 감사하고, 가나안이라는 영원한 유업에 대해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출애굽은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고, 영원한 유업은 미래의 복에 대한 감사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현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미래, 현재에 부단히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에는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 감사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보십시오.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먹을거리를 갖고 나왔으나 그게 금방 다 떨어졌습니다. 이후 하나님이 다 그들을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셨고, 옷이 낡지 않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날마다 행군했는데, 발이 부르트지도 않게 하셨습니다. 누구도 광야에서 농사를 짓거나 사냥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기는 해도 굶거나 목말라서 헐벗어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인 에어컨으로, 밤에는 불기둥인 히터로 지키셨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굶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괜히 우리가 조급하고 경박해서 방정을 떠는 겁니다. 날아가는 새나 들의 백합화를 보십시오. 굶기시지 않습니다. 다 입히십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주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닙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잘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파산하거나 부도나거나 실직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시고 감사하십시오.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을 통해 여러분 가정의 필요를 채우신 겁니다. 열심히 뛴다고 성실하다고 다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겁니다. 이것을 인정하십시오. 여러분, 남편이 신통하지 않습니까? 올해도 회사에서 안 짤리고, 한 달이 되면 꼬박꼬박 월급 받아 오는 게 얼마나 신통합니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샐 리 없는데,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 회사에서 퇴출되지 않고 가족들 안 굶기며 가장노릇하게 할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 뒤따라 다니며 커버해 주신 겁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사고 치면 주님이 알게 모르게 수면 아래서 다 수습하신 겁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가 날마다 쉬지 않고 감사해야 할 원초적인 조건들 마음에 깊이 각인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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