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3801",
  "title": "역설의 기쁨",
  "authors": [],
  "category": "column",
  "dates": {
    "registered_at": "2010-11-20T11:30:38",
    "original_updated_at": "2010-11-20T11:30:38",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div>
<span class="Apple-style-span">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권고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기뻐할 처지가 돼야 기뻐하고, 현실은 기뻐할 일보다 오히려 슬퍼할 일, 아파할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 남이 우는데 나 혼자 기뻐하는 것도 자칫 삶을 조롱하는 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기뻐하는 것만이 미덕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바울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는 기쁨보다 늘 고난을 더 많이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우선 불치의 병을 앓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병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마치 &lt;몸을 찌르는 가시&gt;와도 같은 심각한 병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또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도 그랬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함으로써 모진 아픔을 주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또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lt;항상 기뻐하라&gt;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기쁨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한마디로 역설적인 기쁨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서 만이 아니라 병이나도, 고통 중에도, 감옥 속에서도 기뻐하는 초월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기쁨이 실제 가능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span></div>
<!-- paragraph:p0002 -->
<div><br>
</div>
<!-- paragraph:p0003 -->
<div>폴 틸리히는 기쁨과 즐거움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갈라디아서 4:19 이하에서 말하는 해산이란 몹시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게 결코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다고 기쁨마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게 비록 고통의 극한까지 간다 해도 기뻐할 수는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과 기쁨은 얼마든지 동시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 고통과 아픔이 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의 고통이 혹 즐거움은 앗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기쁨은 결코 빼앗지 못한다는 것입니다.</div>
<!-- paragraph:p0004 -->
<div><br>
</div>
<!-- paragraph:p0005 -->
<div>자, 그럼 고난 중에도, 고통 중에도, 손해를 보고 막대한 불이익을 당해도 여전히 기뻐할 수 있는 그 역설적인 기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의 대상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합니다. 자식의 존재가 어머니를 가득 채우고 있으면 어머니는 그 어떤 희생이나 고난도 기쁨으로 감수할 수 있습니다. 참 기쁨은 언제나 존재 그 자체를 기뻐할 때입니다. 예술가의 진정한 기쁨은 예술 그 자체에 심취할 때 오는 것이지 예술을 이용해 돈이나 명예 따위를 얻겠다고 한다면 즐거움은 몰라도 기쁨은 이미 틀린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권하는 기쁨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복받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주님이 아니라 그 분 존재 자체가 목적이고 그 분 자체가 순수한 사랑의 대상으로 나를 가득 채울 때 비로소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결코 즐겁지는 않습니다. 즐거움으로 말하면 세속적인 삶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는 분명 값진 기쁨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바울이 말하는 역설적인 기쁨이고 초월적인 기쁨입니다. </div>
<!-- paragraph:p0006 -->
<div><br>
</div>
<!-- paragraph:p0007 -->
<div>여러분은 지금 어떤 처지에 계십니까? 혹 바울처럼 몸을 찌르는 가시 때문에 고통을 겪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모함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 감옥 같은 현실에 갇혀 절망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이 금년 추수감사절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고백해 보십시오. 그게 바로 역설적인 기쁨이요 초월적인 감사요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바쳐 마땅한 최고의 헌상일 것입니다.</div>
<!-- paragraph:p0008 -->
<div><br>
</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