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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m: 자기기만 주님멸시(갈 6:7-9)

2010년 11월 14일 주일낮예배/성례주일
본문: 갈 6:7-9
제목: 자기기만 주님멸시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여기 나오는 업신여김을 전에 개역성경은 만홀히 여김이라고 했습니다. 원어의 뜻은 속이다, 기만하다, 우롱하다, 농락하다, 멸시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자기도 기만하지 말고, 하나님도 우롱하지 말라는 겁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에게 안 속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당하지 아니하신다,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럴 듯하게 언행을 해도 하나님은 안 속으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대체 어떤 행태가 자기도 속이고 하나님도 기만하는 것입니까? 먼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순리를 무시하는 겁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창조의 질서를 거스리는 삶의 행태가 바로 자기기만이고 하나님 기만입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언제나 자기가 심은 만큼 거둡니다. 이게 바로 인과율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 이전에 자연의 순리요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실은 이것을 다 비웃습니다. 그래서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거나, 조금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합니다. 자기가 심은 것보다 수천 수만 배 거두려고 합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겁니다. 불로소득의 한탕주의는 자기기만이요 하나님 기만입니다.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회나 개인은 다 망합니다. 여러분, 축복은 거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축복은 축복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겁니다. 구원은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인과율의 도식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게 은혜를 베푼 겁니다. 그러나 축복은 우리가 축복의 씨앗을 뿌려야 거둡니다. 그러므로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하면 잘못된 것이며, 자기기만이요 하나님 기만인 죄악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합격을 바란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요 하나님을 우롱하는 겁니다.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막대한 수입을 기대하는 것은 틀린 겁니다. 더는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더는 하나님을 기만하지 맙시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십시다. 그 원리에 충실하십시다. 이런 사람이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런 사람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불로소득을 기대하거나 일확천금을 바라지 마십시오. 올해도 모두가 성실하게 땀 흘려 심고 뿌린 것을 거둠으로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성도되시길 기원합니다. 못 뿌렸으면 거둠이 없는 현실을 수용하십시오. 그런 자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음은 육체를 위해 심고 영생을 거두려는 것입니다. 이것도 자기기만이요 하나님 우롱입니다.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 열심히 심는 사람과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필히 썩을 것을 거둔다는 겁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원히 썩지 않는 영생을 거둡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누구며,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누구입니까?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세상 사람들이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교인 중에 어떤 이는 육체를 위해 심고, 어떤 이는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겁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고 오직 육체를 위해 심습니다. 그래서 그가 거두는 것은 썩고 말 것만 거둡니다. 믿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열심히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육신을 위해 심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육체의 본능대로 심는다, 육체의 욕구대로 심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것은 성령의 주문대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오직 육의 것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뿌리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수확이 있어도 다 썩을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이요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사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가치관이 신령해야 합니다. 세속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적이며 영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날마다 육신을 위해 심고 거둡니다.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자기기만입니다. 우리가 영생 얻겠다고 예수 믿는데, 실제 삶에서는 전혀 영생을 위해 심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육에 속한 사람은 오직 육신적인 것만 구합니다. 신령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아버지의 뜻대로 구했습니다. 이게 영에 속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다음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것입니다. 이게 또한 자기기만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시험에 빠지면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수습이 어렵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모든 농사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작물도 오늘 심어 내일 거둘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많이 기다려야 하고, 어떤 것은 잠시만 기다려도 됩니다. 보리 같은 것은 초여름에 수확하나, 벼는 늦가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오늘 심고 오늘 거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낙심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시간표만 하나님께 제시하면서 하나님을 윽박지르고 좌절하고 제 바람에 실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승복해야 합니다. 내 시간을 들이대고 하나님을 협박해서는 안 됩니다. 낙심, 이게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올무요 복병이 바로 낙심입니다. 지금도 주변에 보면 낙심해서 교회생활 더 안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전도해 보면 왕년에 예수 안 믿었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떤 일로든 낙심해서 지금은 신앙생활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선을 행하는데도, 성령을 위해 열심히 심는데도 낙심이 되고 좌절하며 시험이 온다는 겁니다. 히브리서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거역한 일을 오래 참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11장 1절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당장이 아닙니다. 여러 날 후에 되찾습니다. 신앙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때가 되면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디 낙심치 마시고 묵묵히 성령을 위해 심으십시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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