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14n: 더 나은 제사(히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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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히 11:4
제목: 더 나은 제사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얘기는 창세기 4장에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하고 에덴에서 추방된 후에 두 아들을 낳는데 그 첫째가 가인이고 둘째가 아벨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인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두 형제가 나란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아마도 추수감사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이 예배와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형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접수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성질이 났겠습니까? 결국 형이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해서 돌로 쳐죽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왜 하나님이 형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을까요? 왜 동생 아벨의 제사만 접수하셨을까요? 가인은 피의 제사가 아니라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서 소위 피의 제사를 드렸기에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만 그런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그때는 모세의 율법 이전입니다. 율법을 소급 적용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냥 가인은 농부였기에 곡식을 바친 것이고, 아벨은 목자였기에 양을 잡아 바친 겁니다.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의 의문을 밝혀주는 곳이 오늘 본문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아벨이 가인보다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믿음의 제사냐 아니냐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드렸다는 믿음의 제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사입니까? 창세기 4장 3절 이하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가인이 그냥 드린 곡식과 아벨의 양의 첫 새끼입니다.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에는 첫 소산이라는 설명이 없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바쳤습니다. 아벨과 가인이 제사에 임하는 태도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배는 내 믿음을 온몸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예배는 내 믿음의 총결산입니다. 예배를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을 보시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확인하십니다. 예배에 소홀하면 지금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무심하다는 뜻입니다. 가인이 첫 열매가 아니라 먹던 곡식을 퍼다가 하나님께 드렸다는 얘기는 지금 그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얘깁니다. 반면에 아벨처럼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렸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존재마저도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신 겁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나의 존재 전부를 드려야 그게 산 제사입니다. 양의 첫 새끼를 바친 아벨의 제사는 그냥 죽은 양을 바친 게 아닙니다. 첫 양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린 겁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다.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내 믿음을 뜻하는 한 치도 어김없는 바로미터입니다. 예배는 한 주간의 첫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며 나의 한 주간을 다 바치는 행위입니다. 예배는 내 수입의 첫 열매인 십일조를 바침으로 내 모든 소유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종교의식은 받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예배에 내 존재 전체가 실려야 하나님은 그 예배를 산 제사로서 흠향하십니다. 가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기에, 예배에 자기의 존재, 생애, 삶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겁니다. 하나님은 양고기에 허기지거나 양의 피에 굶주린 분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받고자 하는 것은 내 존재 전체입니다. 어떻게는 우리는 이것을 바쳐야 합니다. 가인의 제사는 이게 아니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양의 첫 새끼를 바쳤다’고 단지 한 문장이 적혀 있지만 이 문장에는 아벨이 그의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바쳤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재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의 재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재물만 취하신 게 아닙니다. 아벨과 아벨의 재물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벨의 재물은 결국 아벨 자신을 뜻하고, 가인이 바친 재물은 결국 가인 자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나 예물은 우리 자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은 곧 우리를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제사가 아니면 받지 않으십니다. 아벨의 제사는 곧 믿음의 제사요, 의인의 제사였기에 받으신 겁니다. 가인의 제사는 믿음 없이 드린 그냥 형식적인 예배, 단순한 종교의식이었기에 받지 않으신 겁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은 가인의 제사를 깊이 생각하십시다. 예배가 무엇을 뜻하고, 제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히 생각하십시다. 결코 우리는 가인의 길을 밟지 맙시다. 양의 첫 새끼를 바침으로 산 제사를 드린 아벨처럼 믿음의 제사를 바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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