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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0일 수요성경공부/예레미야 강해 64</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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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 38:14-2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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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 [15]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16]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는지라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20]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21]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22] 보라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 여자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23]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려가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읍으로 불사름을 당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24]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어느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고관들이 내가 너와 말하였다 함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말씀한 것을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에게 숨기지 말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또 왕이 네게 말씀한 것을 전하라 하거든 [26]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 마소서 그리하여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27] 모든 고관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으매 그가 왕이 명령한 모든 말대로 대답하였으므로 일이 탄로되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그쳤더라 [28]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물렀더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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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고관들에 의해 깊은 우물 진창에 갇혔던 예레미야가 에벳멜렉이라는 경건한 궁중 내시에 의해 살아나왔습니다. 에벳멜렉이 시드기야 왕에게 나가 무고한 선지자를 저렇게 죽이는 것은 안 된다고 했는데, 시드기야가 군사 30명까지 주어서 예레미야를 구출합니다. 그리고나서 시드기야 왕이 은밀히 예레미야를 만납니다. 16절입니다.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는지라.” 어떤 말을 해도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와 이 나라의 운명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을 가감 없이 내게 고하라고 합니다. 왕의 맹세가 하나님을 두고 했기에 예레미야가 다시 한 번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다 고합니다. 바벨론 왕에게 당장이라도 왕이 순순히 항복하면 왕도, 왕의 가족도, 이 성도 불사름을 당하지 않을 것이나, 끝까지 버티면 그들의 손에 다 죽고 이 성도 불타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면 감히 왕 앞에 할 수 없는 말을 예레미야가 적나라하게 했습니다. 영국 성공회에 파티머라는 유명한 감독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강단에 올라와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성도가 여기 헨리 왕이 왔으니 조심해서 설교하라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순간 파티머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에 성령의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파티머야 여기 만왕의 왕께서 임석하셨다.’ 그러니까 신앙 양심을 배반하지 말라고 한 겁니다. 그는 왕의 비위를 맞추는 비겁한 설교자가 아니라 자기가 준비한대로 선포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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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큰 유혹과 시험은 바로 듣는 사람들에게 아부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고의적으로 헌금 설교 같은 것은 피합니다. 왜냐면 다 헌금 설교는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런 설교도 해야 합니다. 이게 참 문제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그저 말초신경만 건드려 주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만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설교자가 다 코미디언이 되어 갑니다. 청중에게 아부한 설교자의 소치입니다. 한국교회의 강단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청중의 기호에 편승해서 목회자의 설교가 다 편향되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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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왕 앞에서도 가감 없이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 점에서 오늘 한국교회 설교자의 귀감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당시 선지자가 예레미야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선지자는 백성들 듣기에 좋은 말만 했습니다. 아무 일 없고, 평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레미야만 끔찍한 선포를 한 겁니다. 다른 사람은 박해 받지 않고 평안히 살았습니다. 예레미야만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비전이나 희망이 아니라 저주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왕에게 적국에게 나가 항복하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까.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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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도 사실 항복하고 싶은데 갈대아인들에게 투항한 유다인들이 절대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드기야가 포악하니까 거기에 시달린 유다인들이 바벨론 군대로 투항한 겁니다. 그래서 시드기야가 이제 바벨론에 항복하면 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무섭다는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예레미야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시드기야는 안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릅니다. 한 나라의 악한 왕과 그 밑에서 희생당하던 백성이 이런 관계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너 나 안 보고, 나 너 안 보면 그만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납니다. 그런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 발목을 잡을지 모릅니다. 사람 일은 모릅니다. 절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만납니다. 그래서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 사람이 내게 득이 됩니다. 시드기야 왕을 보십시오. 바벨론에 투항해서 자기도 살고, 가족도 살며, 예루살렘 성도 지키고 싶은데, 그렇게 했다가는 자기를 미워하는 유다 병사들이 자신을 죽일 것 같아 결국에는 투항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도 그 가족도 다 죽고 예루살렘이 불탑니다. 아무리 예레미야가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강조해도 결국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미적대고 버티고 두려워 떨다가 더 참혹하고 비참한 최후를 당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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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무리 심한 말씀이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가 순종하고 복종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왕에게 순순히 항복하라는 말은 너무도 가혹한 말입니다. 끝까지 항전하라는 말은 격려가 될 수 있지만 순순히 나가 백기를 들라는 말은 못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혹독하다 가혹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절대 바벨론 왕으로 하여금 너를 유다 사람들에게 내주지 않게 하겠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믿고 백기를 들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믿음이,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은 정비례합니다. 우리가 믿는 만큼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가서 종말과 최후심판을 얘기한다 해도 그들은 믿음이 없기에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결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걱정과 계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멸망이 임박했는데도 그것을 접수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말씀에 복종하십시오. 유다 군이 나를 조롱하고 해치면 어떻게 하나, 나를 가장 비참하게 보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면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수습하시고 해결하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다 불타고 다 잡혀가고 다 죽습니다. 39장에 가면 다 죽고 불타며 눈이 뽑히고 난리가 납니다. 이 유다의 운명과 시드기야 왕의 처신이 오늘 우리에게 값진 교훈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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