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7m: 쓸쓸한 가을 이야기(딤후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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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7일 주일낮예배
본문: 딤후 4:9-11
제목: 쓸쓸한 가을 이야기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사도 바울은 참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것 같지만 막상 다가가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에서 감옥살이를 하던 말년에는 더욱 외로웠습니다. 그와 함께 일하던 사역자들이 다 그를 떠났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5절을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에게 해 서남부의 소아시아 지방, 지금의 터키 땅입니다. 거기에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많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7교회가 나오지만 사실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다 바울을 떠났다는 겁니다. 당시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의 비애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본문을 보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속히 내게 오라고 합니다. 11절을 보면 올 때 마가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원래 마가를 싫어했습니다. 제1차 전도여행 때 마가가 중간에 되돌아간 전력 때문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 마가 때문에 자기의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바나바와도 싸우고 갈라섰습니다. 그런데 그 마가를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4장 21절을 보면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주후 67년 가을에 썼습니다. 바울 생애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글입니다. 요즘 같은 가을에 쓴 겁니다. 4장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이미 바울이 이 디모데후서를 쓰면서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는 디모데후서를 쓰고 얼마 있지 않아 네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목회와 선교에 성공한 사람입니까? 바울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유명한 이유는 글을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2/3가 바울의 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글을 보고 바울을 보고 그를 존경합니다. 바울이 남긴 글들은 문학작품이나 신학논문이 아닙니다. 다 서신들입니다.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 보낸 편지들입니다. 그 많은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를 세웠지만 한 교회도 멀쩡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그때마다 교회를 방문할 수 없으니 편지를 보내서 그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신약성경 2/3나 차지하는 바울서신들입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편지보다 훨씬 더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쓴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를 보면 바울이 얼마나 고독하고 그 최후가 딱하고 쓸쓸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다 가버렸습니다. 특히 데마 라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합니다. 데마는 이런 사람입니다. 빌레몬서 24절입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골로새서 4장 14절에도 나옵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누가와 나란히 등장했던 데마는 바울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심지어 초대교회 때의 한 문서에는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의 오른편에는 누가가, 왼편에는 데마가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실했던 동역자 데마가 어느 날 갑자기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겁니다. 이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 얘깁니까? 주후 67년 바울의 순교가 지금 코앞에 닥쳤는데 그를 등지고 세상을 사랑해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겁니다. 그 아픔이 바울에게 얼마나 컸겠습니까? 데마는 바울이 가장 힘들고 외롭고 절박할 때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배신했다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세상을 등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등지지 않고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실족해서 주님을 떠나는 이유가 세상에 대한 애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 가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 그 시간부로 주님 망신입니다. 내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뻔뻔하게 예수 믿는다고 합니까? 올해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을 사랑해 주님을 떠났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택했을까요?
그러나 여기서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말은 그가 배교를 했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바울을 버린 것이지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는 유명한 그리스도인들의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지정학적으로 마게도냐 여러 도시 가운데 로마 당국의 박해로부터 가장 안전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로 모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데마의 데살로니가 행도 배교라기보다는 희생적인 신앙에서 안이한 신앙으로의 퇴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신적인 신앙에서 나태한 신앙으로 퇴보한 겁니다. 고난의 한복판인 로마에서 더는 고난이 없는 데살로니가로 도피한 겁니다.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노 사도를 돕던 자리에서 방관자의 자리로 전락한 겁니다. 데살로니가는 편안한 신앙생활을 보장합니다. 더는 누구에게도 희생이나 고난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데살로니가로 몰려갔는데 그 대열에 데마도 가세한 겁니다.
그러면 바울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누가 있기는요 누가만 있습니다(11절).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의사였습니다. 그는 바울의 주치의였습니다. 요즘은 잘 안 보이던데 전에는 <성 누가 의원> 간판이 많았습니다. 바로 그 누가입니다. 누가는 당시 사회에서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그 사회의 엘리트였습니다. 실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고급스런 헬라어로 쓰였고, 문체나 어휘력도 뛰어납니다. 그러나 그는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바울 곁을 지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 둘 바울을 떠나고 마지막엔 왼팔 노릇을 하던 데마마저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사도 바울의 최후를 지켰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만, 누가가 바울의 시신을 수습했을 겁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 힘들다고 세상이 나를 꾄다고 달아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불행한 일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데마의 길과 누가의 길입니다. 로마로 가는 길과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확인하고 점검하십시오. 안일하고 나태하고 도피적인 데살로니가로 가고 계시진 않습니가?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렸던 데마의 길을 걷고 계시진 않습니까? 누가가 홀로 고난당하는 로마의 길로 가십시다. 습기차고 어두컴컴한 로마 감옥에서 하는 바울의 간곡한 당부를 들으시고 모두가 다시금 고난의 자리에, 누가의 자리로 복귀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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