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고독한 단독자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홀로인 것이 좋지 않아 보여, 즉 고독해 보여서 다시 하와를 창조하사 쌍이 되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이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담이 하와와 더불어 살기 전에 홀로였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는 또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이 역시 부부란 원래 한 몸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가 아니라 남녀가 각각 홀로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게 아니고 하와가 홀로 받습니다. 그리고 유혹에 넘어가 이미 변질된 하와가 아담도 자기처럼 타락시키기 위해 유혹합니다. 이것은 비록 둘이 한 몸은 아니지만 함께 하지 않고는 못 사는 게 남녀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인간창조 기사는 남녀가 한 몸인 듯 보이나 어쩔 수 없이 둘이고, 같은 공간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사나 결국은 각기 홀로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또 그들이 범죄한 후 부끄러워서 자기의 치부를 가렸다고도 합니다. 이것 또한 인간의 고독성을 뚜렷이 드러낸 대목입니다. 부끄러워서 가렸다는 것은 자기를 남에게 공개하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만의 깊은 비밀을 간직한 채 타인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책임 앞에 홀로 섭니다. 
실제 우리는 자주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로 자기를 마주 대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확실히 일상의 잡다한 언어나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는 것보다 훨씬 덜 외롭습니다. 요즘은 교회 안에도 ‘나 홀로 크리스천’인 <솔리스천>이 많습니다. 그들은 주일 낮예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그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데 그것은 사교적이지 못해서라기보다 교회 일에 엮이기가 싫어섭니다. 심지어는 교회 출석도 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TV 등으로 예배를 드리는 외톨이 신자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개인주의, 이기주의 문화의 확산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로 과도한 새신자 등록과정, 기성 교회의 예배와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 등을 이유로 꼽는데 그 모든 문제들을 다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주님도 때로는 고독한 행태를 보이십니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군중들에게 에워싸여 분주한 시간을 보내신 후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보내시고나서 자신은 홀로 산으로 가시는 등의 쓸쓸한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꽤 여러군데 나옵니다(마 14:23, 막 1:35, 요 7:53).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밤 또는 새벽에 산이나 광야에 홀로 나가신 것은 고독을 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적을 피해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도 하셨습니다(마 4:6). 기도란 모든 관계를 떠나 홀로 있을 때, 바로 그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고 또 동시에 저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며 외로이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비명도 들으셨습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함께 만나신 겁니다. 그래서 어두움과 파도를 헤치며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고, 또 제자들은 의연히 풍랑을 딛고 서신 주님을 전혀 새로운 감격으로 만났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이 벌써 11월 첫 주일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풍랑 만난 이웃들의 무수한 신음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내게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지친 거지요. 병든 겁니다. 기도하십시오. 어느새 3주차에 들어가는 4주간 특별새벽기도회는 그야말로 기도의 골방이며, 주님 자주 찾으셨던 기도의 동산이요 광야입니다. 고독한 단독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홀로 서 보십시오. 그리고 꼭 하나님의 음성과 이웃의 비명을 함께 들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