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31m: 바실레이아 투 데우(막 1:14-15) 종교개혁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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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31일 주일낮예배/종교개혁주일
본문: 막 1:14-15
제목: 바실레이아 투 데우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주님이 공생애 3년 동안 선포하고 가르치신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4절 하반절 이하를 다시 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주님의 공생애 제1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한 군 데를 더 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주님이 3년간 사역을 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 이 땅에 계셨는데, 그때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주님의 공생애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설교제목이 <바실레이아 투 데우>인데 이게 헬라말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기에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부터 끝까지 이것을 외치고 가르치셨을까요? 우리는 나라라고 하면 공간적인 영토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한반도, 일본열도, 중국 대륙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우리가 죽어서 가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주권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는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 같으면 하나님의 주권이 완벽하게 관철되는 세계이기에 정말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면 이 땅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된 겁니다. 내가,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주권이 서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가정에 이루어진 겁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 뜻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3년간 이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가르치고 외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주님이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언제, 어디서 외치셨습니까? 주님이 공생애를 어디에서 시작하셨습니까? 14절 말씀을 보면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라고 합니다. 요한이 헤롯 왕에게 왜 잡혔습니까? 그가 헤롯의 불륜을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범으로 잡혀들어갔습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헤롯에게 잡혀 간 직후에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시는데, 바로 요한이 잡혀간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헤롯의 권력이 횡포하는 갈릴리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통치, 지배, 주권을 외친 겁니다. 헤롯의 주권이 지배하는 땅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주님의 공생애 시점과 장소 갈릴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도전적이며 현실에 대한 선전포고입니까? 헤롯의 권력이 의인 요한을 잡아갔는데, 그 현장에 직행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공생애는 대단히 투쟁적이었습니다. 절대 정태적이지 않았습니다. 혁명적이고 개혁적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요한이 정치권력에 엮어 들어간 그 시점에, 또 잡혀간 그 현장에 주님이 부리나케 가셔서 하나님의 주권을 외치며 공생애를 시작하신 겁니다.
주님은 갈릴리에서 요한이 헤롯에게 잡혀 간 그 시점에 하나님의 나라를 외치셨는데, 그 다음 행보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장으로 갑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니까 공생애 첫 사역지였던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선포가 사회개혁을 의미했다면, 예루살렘에서의 두 번째 사역은 종교개혁을 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의 본부요 거점입니다. 그 유대교의 심장부에 돌진하셔서 주님이 난동을 부리신 겁니다. 채찍을 휘두르며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이 짐승과 돈을 다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과격한 개혁입니다. 주님은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의 확실한 모범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도 공생애 초기에 말입니다. 불법적인 헤롯의 권력에 맞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고, 곧장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타락한 유대교의 심장에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냥 유순한 분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향해 입에 못 담을 욕까지 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들’이라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종교개혁도 이런 주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계승한 사건입니다. 잘 아시는대로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가 출범했는데, 개신교 초기에는 교단이 2개밖에 없었습니다. 칼빈주의의 장로교, 루터주의의 루터교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2개 교단 가운데서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 명명하는 교단은 칼빈주의의 장로교뿐입니다. 똑같이 종교개혁을 통해 출범했으면서도 루터교에 대해서는 개혁교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장로교라 하지만, 장로교의 본산인 유럽 쪽으로 가면 개혁교회라고 부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도 장로교라고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개혁교회라 해야 알아듣습니다. 개혁을 통해 시작했으나 장로교만 개혁교회이고 루터교는 개혁교회라 부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루터교회는 유명한 두 왕국설(Zwei-Reiche-Lehre)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원론입니다. 교회와 정치를 칼처럼 구분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며 두 왕국설을 주장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중세 교회의 종교와 정치의 야합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처음부터 정교 분리의 원칙을 주장했습니다. 현대 신학자 가운데 칼 바르트는 히틀러의 만행 앞에서 독일교회가 침묵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루터교회의 이 두 왕국설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루터교회가 정교 분리의 원칙을 적용했기에 히틀러가 마음 놓고 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두 왕국설이 아니라 그리스도 통치설(Koenigsherrschaft Christi-Lehre)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이것은 일원론입니다. 모든 게 다 주님의 통치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도 종교도 사회도 문화도 역사도 다 주님의 지배 하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네바에서 칼빈이 개혁을 시작할 때 시정(市政)을 장악하여 신정(神政)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영역에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개혁의 대상입니다. 주님의 주권이 관철되지 않은 삶의 영역에 개혁의 기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바라보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의 통치 하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칼빈주의 곧 장로교 전통의 중요한 개혁사상입니다. 주님의 지배, 통치의 대상에서는 어떤 영역도 열외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500년 전에 칼빈이 주도했던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제네바 시를 완전히 교회법으로 다스린 겁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통해 함께 출범을 했지만 루터교는 개혁교회가 아니라 장로교만 개혁교회라 부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이런 개혁교회의 전통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개혁정신을 계승하고 더욱 현실에서 심화하고 발전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 장로교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본질에서 멀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래 개혁교회는 순발력이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개혁에도 앞장서는 순발력있는 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깊이 이해하시고 주님의 뒤를 좇아서, 또 개혁가들의 전통에 서서 이 시대의 개혁의 기수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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