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주의 심으신 포도나무(시편 80)

2010. 10. 28.
주의 심으신 포도나무
시편 80:1-19

이 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탄식하며 그 회복을 간구하는 애가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패망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양과 목자에 비유합니다(1절). 양에게는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아무런 방어기재가 없습니다. 오직 목자에게 의지하여 목자의 도움을 입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인 이스라엘이 목자되신 하나님을 자주 떠나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고백은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런 뼈저린 체험에서 나온 절절한 고백입니다.

얼굴 빛을 비추소서!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3절).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7절).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9절).
이것은 이미 망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염원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얼굴 빛을 이스라엘을 향해 비추시기만 하면 곧 모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아무리 방안 가득 어두움이 차 있어도 등 하나만 밝히면 다 사라지듯 주님의 영광의 빛이야말로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어느 때까지니이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4절).
하늘 양식을 먹던 백성들이 이제는 <눈물의 양식>(5절)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자만이 인생을 알 듯이 우리 믿는 자들도 <많은 눈물을 마셔 봐야>(5절)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주님이 <당신의 눈물 병에 담고 계신다>(시 56:8)는 말씀도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말씀 아닙니까? 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 126:6)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부디 눈물의 빵을 씹으며 절망하기보다 오래지 않아 기쁨의 단을 거둘 소망의 날을 기대하며 도리어 감사하십시오. 어느 때까지냐구요? 멀지 않았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하나님의 때까지만 기다리십시오.

주의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하늘에서 굽어 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14절).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가져다 심으신 극상품 포도나무였습니다. 그래서 그 그늘이 산을 가리고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유브라데 강까지 미칠 만큼(10,11절) 번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 담을 허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고(12절), 숲 속의 멧돼지들이 유린하고, 들짐승이 와서 먹게 하셨습니다(13절).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불타고 베임을 당하게도 하셨습니다(16절). 
왜요? 자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자아도취에 빠져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또 가져가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주를 떠나 살면 언제든 주신 것을 다시 회수해 가십니다. 단 한 방이면 족합니다. 주를 떠나 살면 우리는 다 잃어버립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