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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7일 주일낮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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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창 3:8-10</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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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현 주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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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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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던지시는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의 현 주소를 묻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물음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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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첫째는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입니다(9). 아담은 히브리말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람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라는 물음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현 주소를 묻는 말씀이지만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너의 현 주소가 어디인가를 물으신 겁니다. 이 물음을 하나님은 언제 하셨습니까? 범죄한 직후입니다. 3장 6절 이하를 보십시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절대 따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하나님이 두려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을 때 아담을 추적하시며 아담아 어디 있느냐, 지금 너는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며 물으신 겁니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부모 눈치 살피면서 슬슬 피하듯이 아담이 지금 숨어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이신데 하나님이 왜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하나님이 두려워졌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두려워집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고 싶어집니다. 죄 짓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입니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습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이 첫 단추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다 어긋나고 망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단히 우리를 향해 물으십니다. 관계의 현 주소를 점검하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지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현 주소가 어디입니까? 문제가 없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워 달아나고 계시진 않습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범하신 것은 아닙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 앞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성찰하십시오. 이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십시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만사형통입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는 게 성경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비록 육체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는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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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두 번째 물음은 창세기 4장 9절 말씀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직후에 하나님이 물으신 겁니다. 가인이 인류사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자기 동생을 시기해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 직후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이렇게 물으신 겁니다. 이것은 무슨 질문입니까? 형제와의 관계를 물으신 겁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물으신 겁니다. 네 형제 아벨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종과 횡이 교차되어 있습니다.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해야 하고, 횡적인 이웃과의 관계도 건강해야 합니다. 종횡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하고, 다음은 이웃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적대해서 결국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이웃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는 촉구입니다. 위기가 오고 이상이 있으면 그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근본적인 관계이지만, 형제와의 관계도 그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올해 이웃들과 또 형제들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웃은 다 원수며 경쟁관계이지는 않습니까? 지금도 눈총으로 살해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미워하고 시기하고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것, 이것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며 묻고 계시는 겁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확인해서 종과 횡이 건강하게 교차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상 십자가며 기독교입니다. 가인은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분노와 적대로 형제를 돌로 쳐 죽여 놓고도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내가 아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며 시침을 떼며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그 사람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겁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점검하십시오.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반드시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듯이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오후에 바자회합니다. 다 헌 물건, 낡은 것 모아다가 이웃을 모십니다. 이것도 이웃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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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마지막 질문은 신약성경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질문입니까? 나와 내 소유와의 관계를 물으신 겁니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부자가 곳간을 더 크게 짓고 거기에 잔뜩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독백을 합니다. ‘내 영혼아 이제 여러 해 쓸 물건을 곡간에 잔뜩 쌓아 놓았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 이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내가 네 영혼을 오늘밤에 도로 찾겠다. 그러면 네가 준비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남다른 부를 이루었으니 성공한 사람이요 복 받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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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누가복음 12장 18절 이하를 봅니다.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여기에 보면 “내 곳간”, “내 모든 곡식과 물건”, “내 영혼”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부자는 모든 게 다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어리석다고 하신 겁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자는 어리석게도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겁니다. 자기는 청지기일 뿐인데 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도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시한부로 내게 맡기신 것인데 착각하며 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리석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의 영혼을 오늘밤 도로 찾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극명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종일뿐이며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소유권이 아니라 관리권만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았기에 이 부자는 어리석습니다. 너무도 지당한 말씀을 우리는 잊고 삽니다. 진정한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순간이라도 잊지 마십시오. 다 주인이신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뜻에 합당하게 지키고 관리하며 처리해야 합니다. 내 욕구, 내 뜻대로 하면 안 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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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 세 가지 질문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물질(소유)와의 관계가 건강하면 정말 우리의 영혼은 건강한 것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그 사람은 결코 복되지 않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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