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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m: 자유의지와 절대주권(롬 8:26-30)

2010년 10월 10일 주일낮예배
본문: 롬 8:26-30
제목: 자유의지와 절대주권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발동입니다.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행사로 우리를 택하십니다.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겁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행사입니다. 

그런데 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 가운데서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더 두느냐에 따라 신학과 교리, 교단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더 강조하면 칼빈주의입니다. 알미니안주의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신학자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파입니다. 칼빈주의는 종교개혁가 칼빈을 추종하는 교파를 말합니다. 알미니안주의의 대표적인 교단이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 교단이 이에 속합니다. 칼빈주의는 장로교와 유럽 쪽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면 알미니안주의는 왜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강조하며,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더 무게 중심을 둡니까?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타락한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많이 일그러지고 망가졌으나 여전히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그 반대입니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다고 합니다. 전적 타락입니다. 그래서 절대 자기의지를 발동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강제하셔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또한 믿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이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합니다. 이미 시체에서 냄새가 났지 않습니다. 그런데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듣게 하시고 걸어 나오게 하신 겁니다. 여기에 식탁이 놓여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구원의 만두를 빚어 잔뜩 차려 놓았습니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이 빚어 놓으신 만두가 만인을 위한 구원의 만두이지만, 자기 스스로 의지를 발동해서 집어 먹어야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며 구원이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빚어 놓으신 구원의 만두를 내 손으로 집어 먹어야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칼빈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빚어 놓으신 만두라 해도 우리가 갖다 먹을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입을 벌리고 먹여주셔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본문 28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곧”은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알미니안주의니 칼빈주의니 하며 이 둘을 양분하는데, 성경은 “곧” 이라는 부사로 묶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자기 의지의 발동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완벽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믿게 하셔야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과연 선택된 자인지가 궁금하실 겁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자문해 보면 압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약속된 복이 무엇입니까? 28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 기쁨, 성공, 실패 이 모든 것이 결국 내게 은혜가 되며 선한 것이 된다는 겁니다. 내 추한 것, 내 눈물조차도 내게 궁극적으로는 복이 된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지금은 내 몸을 찌르는 가시요 슬픔인 듯 하여도 결국은 이 모든 게 내게 복이 된다는 겁니다. 죽은 나무와 산 나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죽은 나무는 비가 와도 해가 나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 나무는 비가 와도 도움이 되고, 해가 나도 도움이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살았는데, 결국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노예살이합니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고 해서 모함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난해한 왕의 꿈을 명쾌하게 해몽하여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그 과정과 고비를 보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요 아픔입니다. 노예로 팔리고, 종살이 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과정이 그로 하여금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옥살이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알고보니 하나도 버릴 게 없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뜻이요 복이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형들을 만나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애굽에 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 은혜를 베푸셨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까? 26절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지금도 탄식하며 중보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27절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이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간구하시기에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31-32절입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성령이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중보기도하시고,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채워주시는데 어찌 만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자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탄원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 이하입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은혜와 복의 열매를 풍성하게 수확하는 가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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