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0n: 허무의 노래(전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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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0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전 1:12-18
제목: 허무의 노래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행복전도사라 불리던 최윤희 씨가 지난 7일에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습니다. 그분의 자살소식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4-50대 주부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침마당에 나와 강연을 했고, 그분이 낸 20여권의 책의 독자층이 4-50대 주부들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모방 자살 같은 게 없어야 할텐데, 많은 분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자기가 행복을 설파해온 만큼 건강하게 살아보리라 애를 많이 썼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고통과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성경 중에서도 전도서는 허무의 노래입니다. 전도서를 보면 인생은 어떤 경우에도 허무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 무엇도 허무하지 않은 게 없는데 자신을 지키며 산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오죽하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다고 했습니다. 전도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며 나옵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입니다. 그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당대 최고의 지혜자입니다. 당대만이 아닙니다. 지혜에 관한 한 그는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내노라하는 석학과 현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혜의 상징이요 화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유일무이한 지혜의 왕이 지혜에 대하여 말하기를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라는 것도 셀 수 없다’(15)고 합니다. 지성주의, 주지주의, 지식주의를 무색케 하는 솔로몬의 적나라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흔히 박사라고 하면 만능인 줄 아는데 지혜도 지식도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으며, 이지러진 것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지성주의의 한계를 고발하면서 지식에 대한 맹목주의와 맹신주의를 경계하는 최고 지성인인 솔로몬의 충고입니다. 지식에 대한 허무주의를 선포한 겁니다. 고도의 지식도 첨단 정보도 부패한 인간성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17절 입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여기에 나오는 미친 것, 미련한 것, 바람을 잡는 것 모두 지식을 좇는 인간을 원색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18절입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정말 김 빠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허리가 휘도록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있는데 완전히 초를 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그것을 미친 짓, 미련한 짓, 바람을 잡는 짓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맞는 얘기입니다.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 지성만으로는 안 되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합니다. 솔로몬이 지식의 허무주의를 노래하는 이유는 플러스 알파를 얘기하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 경외가 플러스 알파입니다. 지식과 지성은 아무리 추구해봤자 우리에게 허무만 줄 뿐인데, 그것이 정말 내게 행복을 가져오려면 하나님 경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전도서, 욥기, 시편, 잠언서의 주제입니다. 지식이 지식이 되고, 지성이 지성이 되려면 그 바탕에 하나님 경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때만 지식이 내게 행복을 보장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지식이 하나님 경외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식을 쌓아봤자 그게 내게 공허와 허무를 가져다 줄 뿐입니다.
다음은 쾌락입니다. 쾌락에 관한 말씀은 2장 1절에서 11절까지 나옵니다. 쾌락이나 향락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쾌락주의, 향락주의입니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 쾌락주의가 가장 보편적인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이게 하여간 삶의 목표입니다. 왜 공부시킵니까?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쾌락주의가 삶의 일반적인 철학이란 말입니다.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역사상 로마처럼 강성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로마가 망했습니까? 로마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곧 향락주의 때문에 망했습니다. 스스로 망한 겁니다. 그 사람들은 오직 향락을 즐기기 위해 살았습니다. 이것을 에피큐리즘이라고 합니다.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누리자는 게 그들의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자기 식탁 밑에 요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소변이 아니라 잔뜩 먹고 토하고 또 먹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는 가난 때문에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부 때문에, 쾌락 때문에 망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 그렇습니다. 로마, 폼페이, 소돔, 고모라 다 부와 쾌락 때문에 망했습니다. 쾌락주의는 얼핏보면 화려하지만 그 내부에는 견딜 수 없는 공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사람이 이 땅에서 누리고 살 수 있는 최고의 부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짓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쾌락주의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인생은 절대 쾌락을 목표로 살 수 없습니다. 쾌락에는 행복이 없고 허무뿐입니다. 그럼에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문화를 보십시오. 두말할 것도 없이 쾌락과 향락이 중심입니다. 대중문화를 보십시오. 거기에 고상하고 건강한 게 있습니까? 어떤 음악, 영화, 책도 건강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장로교 신조인 요리문답 제1조는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우리 인생의 목표이지, 내가 향락을 추구하며 내 인생을 즐기자는 게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것이 장로교 신조의 제1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의 영화를 위해 삽니다. 자신의 영화를 위해 하나님을 믿어 줍니다. 신앙도 자신의 쾌락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뜻과 영광을 위해 기꺼이 내 한 몸을 바칠 태세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인생 본연의 삶의 철학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허무에 시달리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물질입니다. 2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맹목적 지성주의나 쾌락주의도 문제지만 물신주의, 배금주의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돈 많으면 점점 더 타락해서 온갖 미친 짓하다 죽습니다. 가난하고 먹고 살기 바쁘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죄를 덜 짓습니다. 죄지을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 많고 시간 많으면 틀림없이 죄밖에 지을 게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 망하게 하려면 돈 주고 시간 주고 건강 주라는 겁니다. 그러면 석 달이 안 간다는 겁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 중에 아직까지 잘 사는 사람들 봤습니까? 아무리 많은 당첨금을 타 봐도 오래 못 갑니다. 멀쩡하던 집안이 풍비박산하고, 인간관계가 다 찢어집니다. 알콜중독자가 되고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게 다행입니다. 되면 망합니다. 돈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돈을 믿지 마십시오. 돈은 결코 우리의 참된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돈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지식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면 무엇이 우리에게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보장합니까? 이 물음에 대한 솔로몬의 답이 하나님 절대주의 입니다(mono Jawehism)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합니다. 다른 것은 다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인류사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부와 행복을 경험해 본 사람인 솔로몬이 우리에게 강변하는 진리는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고 오직 하나님만 붙잡으라는 충고입니다. 부디 이 모노 야웨이즘이 여러분의 삶의 철학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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