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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여호와 앞에 뛰놀라!(시편 6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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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lang="EN-US">2010. 9. 30.</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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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여호와 앞에서 뛰놀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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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시편 68:1-10</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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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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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06 -->
<p><span lang="EN-US">9월 마지막 날 새벽입니다. 지난 추석 전날 폭우를 깃점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일교차가 몹시 벌어졌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너무 급해 우리 몸의 생체리듬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까 우려됩니다만 마음 만큼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뛰놀아야 할 것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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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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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lang="EN-US">&lt;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gt;(3절)</span></p>
<!-- paragraph:p0009 -->
<p><span lang="EN-US">&lt;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gt;(4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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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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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그렇다면 계절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여호와 앞에서 뛰놀아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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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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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원수들이 연기같이, 밀랍같이</span></p>
<!-- paragraph:p0014 -->
<p><span lang="EN-US">&lt;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연기가 물러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gt;(1,2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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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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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연기는 아무리 탁하고 매워도 바람같이 사라집니다. 밀랍은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불에 대면 물같이 녹아 버립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그렇게 도망하게 하시고 멸망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공의로우심 앞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뛰놀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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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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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span></p>
<!-- paragraph:p0019 -->
<p><span>고아와 과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고아와 과부를 찾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초대교회도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lt;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을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을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gt;(5,6절).</span></p>
<!-- paragraph:p0020 -->
<p><span>갈수록 성도나 교회의 사회적 약자나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lt;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 보는 것&gt;(약 1:27)이라고 했습니다. 또 주님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들인 고아와 과부와 옥에 갇힌 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신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lt;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gt;(마 25:40). 어떻습니까? 이런 분 앞이라면 누구나 뛰놀만하지 않습니까?</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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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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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비를 내리시고 은택을 준비하시고</span></p>
<!-- paragraph:p0023 -->
<p><span lang="EN-US">&lt;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gt;(9,10절).</span></p>
<!-- paragraph:p0024 -->
<p><span>올해는 유난히 비도 많았고, 무더위도 길었습니다. 특히 제7호 태풍 곤파스로 입은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지금도 야채, 과일 값이 장난이 아니며, 더구나 중부지방은 지난 추석 전날의 집중 폭우로 많은 이재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해야 옳고, 여호와 앞에서 뛰놀아 마땅합니다.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결코 우리를 굶기지 않으시고 헐벗게 하시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lt;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gt;(7절) 그 누구도 농사를 짓거나 길쌈을 하거나 신을 지은 적이 없었으되 굶어 죽거나 헐벗거나 발이 부르튼 사람이 없었듯이 말입니다.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