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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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초입 불현 듯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단촐한 옷차림에 아주 느리게 가는 기차를 타고 가을이 오는 길목을 향해 떠나고 싶습니다. 우수에 젖은 가을 강이며 유장하게 흐르는 이 땅의 풍경, 그 정겨움 또한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오늘은 주일이자 개천절입니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4343년 전 고조선을 창건한 날입니다. 민족의 개국을 하늘이 열리는 사건으로 받아들인 우리 선조들의 건국이해가 참 이채롭습니다. 고조선의 창건이 곧 <하늘의 뜻>이었음을 밝히는 민족적 자부심의 표현일 터입니다. 13세기 고려의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설화는 참으로 많은 것을 얘기합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신세계, 세계관 등을 함축하고 있어서 오늘 우리에게도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 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충족시켜야 했던 세 가지 조건은 오직 마늘과 쑥만 먹을 것, 굴속에서 지낼 것,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우선 짐승이 사람이 된다는 얘기는 윤회적 세계관을 가진 불교의 사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곰과 호랑이의 대결에서 결국은 곰이 승리하여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고대 모계사회의 문화인류학적인 흔적을 말해주는 동시에 곰을 섬기던 토템족이 호랑이 토템족을 이기고 고조선 창건의 주체 세력이 되었음을 뜻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또한 곰이 백 일 동안 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살았다는 것은 당시 고조선이 지향한 이상적 이념의 실체를 대변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인간끼리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는 전쟁보다는 우주의 정기가 응집된 자연의 진액을 빨며 살기를 희망한 평화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밤중 으슥한 곳에 숨어 남의 생명을 노리는 호랑이와 같은 성정의 인간은 경멸하고 배제해 온 민족이라는 속뜻도 담겨 있습니다. 마늘과 쑥은 고대로부터 영험한 약초로 알려져 온 식물입니다. 따라서 고조선은 오직 자연의 내공만으로 살고자 한 생명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음 하늘이 열리고 환웅이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백두산 신단수가 지금 북에 있을 뿐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절반은 아예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남의 나라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우리 민족의 원적지요 발원지가 사연도 모른 채 남의 손에 넘어갔다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디 <단군>은 고대 북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던 제사장, 즉 <탕구르>에서 유래되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러므로 단군의 진정한 사명은 민족 공동체가 겪는 아픔을 하늘의 힘을 빌어 풀어주고 사람들 앞에 정신적 좌표를 제시하는 데 있었으며, 개천절도 바로 그런 제사장의 출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열림>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날에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여 어느 시대나 진정한 <탕구르>를 갖지 못한 나라와 민족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이 시대 우리 민족의 <탕구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사람들 앞에 희망의 빛을 제시할 뿐 아니라 백두산을 되찾아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에도 앞장서야 하늘을 열어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창건케 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