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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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6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 25:14-30
제목: 달란트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오늘 본문은 잘 아시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큰손 투자자가 세 사람에게 투자를 한 겁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달란트란 화폐 단위는 굉장히 큰 겁니다. 드라크마 단위를 아시지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10드라크마 비유가 나오는데, 1드라크마는 한 가족의 3개월 치 양식을 구매할 수 있는 돈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1달란트는 6만 드라크마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1달란트는 금 33kg이니까 5달란트면 160kg이 넘습니다. 요즘 시세로도 수십억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돈을 투자한 겁니다. 그런데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은 당장에 가서 사업을 해서 이익을 남겼다고 합니다. 5달란트 받은 자는 5달란트를, 2달란트는 2달란트의 이익을 창출했습니다. 자기 능력에 걸맞은 이익을 낸 겁니다. 이 두 종은 주인의 기대에 100% 부응한 겁니다. 문제는 1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업을 하는 대신에 땅을 파고 묻었다는 겁니다. 은행 비밀금고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 겁니다. 18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주인은 열심히 사업을 해서 이익을 내라고 투자한 건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쨌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19절 상반절을 보면 오랜 후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종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주인이 좀 더디게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재림이 좀 늦다는 뜻입니다. 벌써 주님이 승천하신지가 200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들이 긴장을 풀고 재림 불감증에 걸려 아무 위기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에 내성이 생긴 겁니다. 그러나 결국은 주인이 왔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19절 하반절입니다. 그들과 결산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종말은 단순히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아니라, 결산입니다. 주인의 심판입니다. 이게 무서운 겁니다. 이래서 종말은 우리에게 심각한 겁니다. 그동안의 내 삶의 진상이 낱낱이 까발려집니다. 호리도 남김없이 드러나 선악간의 심판을 받습니다. 5달란트 받아 5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그동안의 수고와 희생만큼 영광을 받습니다. 21절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주인의 치하입니다. 2달란트 남긴 종에게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23절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같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1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28절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마지막 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왜 주인이 이렇게까지 진노하고 저주하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까? 주인이 맡긴 1달란트마저 허비한 게 아니고 최소한 본전은 지켰는데도 왜 주인이 진노했을까요? 25절을 보면 1달란트 받았던 종도 바로 그점을 주인에게 주지시킵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당신이 내게 1달란트 줬으니 내가 1달란트 되갚았습니다는 겁니다. 손해를 볼 수도 있었는데 원금은 되돌려 받지 않았습니까?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이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며 진노합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 아니라 불충했기 때문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의 주제는 충성, 헌신입니다. 주인이 종들을 칭찬하는 대목을 보십시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주제가 충성입니다. 손해보다는 충성의 여부입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충성이 없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가 받은 달란트로 사업을 하다가 그마저도 손해를 보았다고 하면 주인이 무엇이라 했을까요? 아마 주인은 책망보다는 칭찬했을 것입니다. 잘 하려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주인은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남기고 손해를 봤느냐는 결과가 아니라, 얼마나 헌신하고 희생하며 충성했느냐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겁니다. 1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망과 저주를 받은 겁니다. 주님은 늘 이렇게 하십니다. 과정과 중심을 보십니다. 그것으로 심판하시지 절대 결과만을 놓고 복을 주시거나 저주하시지는 않습니다. 장사하다보면 열심히 해도 이익을 못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주님은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다음에 잘 하라며 격려하시고, 수고했다며 치하하시지, 이렇게 잔혹하게 어두움에 내쫓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종은 그런 과정이 없었기에 가차없이 저주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1달란트 받은 종이 받은 돈을 땅에 묻어두었을까요? 우선 주인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누구는 5달란트, 누구는 2달란트 주는데, 자기에게는 1달란트만 준 겁니다. 인간차별이라고 느낀 겁니다. 주인이 인간 차별한 겁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개인의 능력차를 인정한 겁니다. 본문을 보면 ‘재능에 따라’라고 합니다(15). 사람은 능력이 다 다릅니다. 그럼에도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5달란트씩 맡겼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이며 역차별입니다. 능력도 안 되는 사람에게 5달란트를 맡기고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차별입니다. 따라서 능력에 따라 배분한 것은 종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주인이 결산한 대목을 보십시오. 5달란트와 2달란트 남긴 사람 사이의 산술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똑같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에 따라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을 때 주님은 똑같이 칭찬한 겁니다.
다음은 1달란트라는 것, 다시 말해 작은 일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1달란트로는 생색이 안 난다는 겁니다. 1달란트로는 아무리 뛰어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1달란트로는 이 종의 성에 안 찼다는 겁니다. 이런 종들이 현실에는 많습니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과소평가하며 소홀히 하는 겁니다. 올해 연초만 해도 주님께 각자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땅에 묻어 둔 겁니다. 그게 5달란트, 2달란트라면 시시하게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주인은 항상 작은 일을 통해 곧 1달란트를 통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왜냐면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달란트, 5달란트 받은 사람을 칭찬한 대목을 보십시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많은 것을 맡기겠다’는 겁니다. 작은 일에 불성실하면 큰일도 못합니다. 큰일이 주어지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공허한 소리일 뿐입니다.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제대로 신앙생활하기가 어렵다며 큰 교회로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에 성공하셔야 합니다. 1달란트에 대해 이런 저런 핑계가 많으면 5달란트라 해서 핑계가 없을 것 같습니까? 1달란트에 성공하셔야 5달란트에 성공하시는 겁니다. 작은 일이 항상 함정이요 시금석입니다. 부디 작은 일에 충성하시고 1달란트를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주님은 올해도 우리에게 5달란트, 2달란트가 아니라 1달란트를 맡기신 다음에 예의 주시하고 계십니다. 1달란트에 어떻게 임하는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주인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 때문일 수 있습니다. 24절 이하를 보면, 1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변명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주인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는 겁니다. 주인을 조폭 두목쯤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굳은 사람이란 말은 강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악질이라는 뜻입니다. 이토록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터무니없이 잘못 본 겁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배분하고, 그 능력에 상응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심은 만큼 거둔 사람입니다. 5달란트 받은 종에게 10달란트를 벌어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불한당으로 알았습니다. 26절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실제 이런 종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자기 생각대로 하고, 성경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합니다. 마침내 주님의 추상같은 심판이 선고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30). 이게 악하고 게으른 종, 무익한 종의 최후입니다.
우리는 다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능력에 따라 그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과 결산해야 합니다. 가까이는 올 연말결산이 있습니다. 올해도 떳떳이 주님과의 결산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까? 올 연말결산과 내 인생 최후의 결산이 다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연말결산의 연장이 최후결산입니다. 연말결산의 결과가 좋아야 우리 인생의 최후 정산도 좋습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받은 달란트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실한 종들로 주님께 칭찬을 받는 종들이 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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