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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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쯤 국내에서 상영된 적이 있는 마이클 키튼과 니콜 키드먼 주연의 <마이 라이프>라는 영화 혹 기억나십니까? 디트로이트에서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가 싫고 부끄러워 집을 뛰쳐나온 밥 존스, LA에서 자수성가하여 젊은 나이에 광고업계의 거물이 됩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세련된 도시형의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신장암 확진을 받습니다. 암세포가 이미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어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며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데 아내의 몸속에는 그들의 첫 아기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존스는 자신의 불행을 용납하지 못하여 의사를 향해 미친듯이 외칩니다. 당신이 뭔데 나의 희망과 행복을 빼앗느냐고 ….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다 밉고 죽도록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이 바로 뉴욕 뒷골목의 어느 허름한 한의원이었습니다. 체념과 극단한 분노로 속을 끓이며 절망하고 있는 그를 진맥한 한의사는 단호히 마음속의 모든 미움과 분노의 독을 내버리라고 처방합니다. 한의학을 동양적인 신비로 포장하여 적당히 비과학적인 의술로 표현하려는 감이 없지 않아 보였음에도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증오와 미움의 독을 해독하는 과정은 참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올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습니다. 공식 연휴는 지난 목요일로 끝났지만 금요일 하루를 더 보태 아예 오늘까지 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실은 그래서 더욱 명절 증후군이 우려된다고 하는데 명절 증후군이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전후하여 장보기, 성묘, 귀성길 교통체증, 추석 상차림, 태산 같은 설거지, 가족 친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심한 부담감, 피로감, 짜증과 분노 등의 스트레스 일체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각 가정마다 명절 연휴 때면 거의 안 빠지는 게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요 친지들임에도 연례행사처럼 꼭 다투는 겁니다. 캐캐 묵은 옛날 얘기로, 혹은 유산문제나 문중재산 문제로, 혹은 제사나 연로하신 부모님 문제로 으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거나 팽팽한 긴장이 조장되고 원색적인 싸움까지 벌어집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추석 연휴가 즐거움보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분노와 마음의 상처만 안겨주는 불행한 연휴가 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각종 통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 아닌 게 아니라 분노와 화는 우리의 정신건강에 마치 암과도 같은 독소입니다. 따라서 명절 증후군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분노와 화에서 놓여나지 않으면 결코 치유되거나 해소되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이며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도 <화가 풀려야 인생이 풀린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를 풀고 해가 지도록 분노를 품지 않으며 증오나 저주 같은 범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문제에 대한 우리의 비장의 무기는 역시 기도입니다. 다행히 지리했던 여름이 추석 전날의 집중 폭우로 칼처럼 물러가고 하루 아침에 서늘한 가을이 왔습니다.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온 겁니다. 부디 기도함으로 모든 감정의 앙금과 각종 분노와 화를 다스리시고 속히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온갖 명절 증후군으로부터 놓여나 하반기에도 보다 건강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