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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m: 불의한 청지기의 모험(눅 16:1-9)

2010년 9월 19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16:1-9
제목: 불의한 청지기의 모험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는 심기가 불편합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에 대해 이런 저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청지기가 자기의 재산에 많은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이 사실을 확인했더니 역시 맞았습니다. 보통 손해를 끼친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주인이 그 청지기를 불러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합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주인이 그렇게 하자 청지기가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런데 이렇게 한탄하던 청지기가 무릎을 치더니 곧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채무자를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빚을 일방적을 탕감해 주기 시작한 겁니다. 기름 100말 빚진 자에게는 50말, 밀 100석은 80석으로 채무증서를 고쳐준 겁니다. 이게 보통 규모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올리브유 곧 감람유입니다. 올리브 100말은 바트라는 단위인데, 올리브 한 그루에서 한 바트가 아닙니다. 146그루에서 100바트의 기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100바트에서 50바트를 탕감해 준 겁니다. 밀 100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석이라는 단위는 코르라는 단위인데, 1코르가 275kg입니다. 그러니 100코르는 27,500kg입니다. 이제 곧 정부가 추곡수매를 할 겁니다. 추곡 수매할 때 한 가마니가 80kg입니다. 그래서 80kg 가마니로 계산하면 343가마니입니다. 그러니 굉장한 물량입니다. 그런데 여기다가 80이라 쓰라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채무자들의 막대한 빚을 탕감해 준 겁니다. 그 외에도 5절을 보면,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 탕감해 줬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엄청난 손실을 끼쳐 해고를 당할 처지인데 막판에 다시 주인에게 손해를 입힌 겁니다.

대체 청지기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어차피 쫓겨나니 남에게 선심을 쓰려고 그랬던 겁니까? 아니면 해고하는 주인에게 보복하려고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4절입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그러니까 실직 이후를 대비해서 주인의 재산으로 자선을 베푼 겁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불의한 청지기의 말도 안 되는 짓을 주인이 알았습니다만, 주인의 반응을 보십시오. 8절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그 말도 안 되는 불의하기 짝이 없는 청지기를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당장에 요절을 내도 마땅치 않을 마당에 지혜롭다며 칭찬했다고 합니다. 헛갈리지 않습니까? 난해합니다. 마지막 9절 말씀은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을 직역하면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 대목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뜻입니까? 방법이나 수단은 아무리 부조리해도, 과정은 아무리 도적 같아도 목적만 숭고하면 합리화되고 정당화된다는 뜻입니까? 그러니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 벌라는 뜻입니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먼저 채무자를 불러 주인의 빚을 제 멋대로 탕감해준 청지기의 소행에 대해 주인이 칭찬한 대목부터 보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청지기가 또 다시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부분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당장 쫓겨날 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순발력 있게 모험을 감행한 청지기의 그 발상을 높이 평가한 겁니다. 그 와중에도 악착같이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는 청지기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 돈도 아니데 말입 니다. 이게 참 대단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주님이 오늘 이 난해한 비유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나 위기의식 없이 살아가는 제자들과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이 세대의 아들은 이 시대의 세상 사람들입니다. 빛의 아들은 이 시대의 믿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책임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그게 불의한 방법이든,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든 아랑곳 않고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악착같이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빛의 아들들은 너무도 미래에 대해 준비가 소홀하며 안일하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해고 이후를 생각해서 또 다시 불의한 모험을 단행한 청지기의 소행을 역설적으로 칭찬하시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무책임한 빛의 아들들을 고발하신 겁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작 천국을 준비하는 일에는 너무도 무심하고 무책임하다는 겁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우리는 천국을 가기 위해 빚진 자를 탕감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천국은 보상으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이나 영화는 은혜가 아니라 댓가요 보상입니다. 상급입니다. 천국가기 위해 자선할 필요는 없으나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을 위해서는 자선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철저한 대비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아직도 이 땅에 살게 하시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는 데 있습니다.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비상한 노력과 결단으로 준비해야 우리의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이 영화롭고 복 됩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살면 은혜로 천국은 가지만 영원히 부끄러운 구원은 면치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우리가 후에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이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해, 달, 별이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빛도 빛 나름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은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왜냐면 그것은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아들들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답이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의한 재물은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절도나 강도나 불로소득이나 도박 돈을 가리킵니까? 그렇지 않고 이 세상 재물 일반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재물을 부정하다고 하십니다. 세상에는 깨끗하고 정당한 재물은 없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회를 보십시오. 바닥을 기면서 산 사람도 아니고, 그쯤 되면 부정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막상 그들을 청문해 보면 먼지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흔히 고위 공직자 후보로 오르내리는 교수들 보십시오. 평생 연구하고 아이들 가르친 분이 무슨 투기를 하며, 위장전입을 할 것 같습니까? 그런데 다 그렇게 했단 말입니다. 아마 그분들은 그랬을 겁니다. 내가 무슨 부정한 일을 했던가? 내게 무슨 하자가 있던가? 이렇게 자부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검증해 보니 다 그렇고 그렇더라는 겁니다. 요즘은 후보자가 되면 스스로 고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선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좋은 고위직을 고사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합니다. 사실 우리는 구조악 속에서 삽니다. 따라서 개인적 도덕성이나 윤리적 신념과는 상관없이 우리도 나름대로는 악에 일조하면서 삽니다. 다른 사람만 악을 저지르면서 사는 게 아니라, 우리도 다 거기에 발 담그고 있는 겁니다. 교수들이 논문으로 여기저기에 게재하고서 논문 한 편으로 연구비를 여러 번 받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죄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줄줄이 낙마합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이 여기에서 말씀하신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는 말은 그런 세상 재물의 리얼리티를 지적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이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신 것은 모든 재물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 불의하다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절대 무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에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따라서 주인으로부터 물질을 받은 청지기로서 주인 뜻에 합당하게 관리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실 때 너 하나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오직 우리는 가진 재물을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재물은 아무리 정당하게 벌었다 자부해도 불의한 겁니다. 왜냐면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주님 앞에서는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 해서 떳떳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주님 뜻에 맞게 집행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재물을 불의하다고 하신 겁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사는 게 미래와 영원한 내 운명을 위한 책임적인 삶이 되고 천국의 영광을 준비하는 삶이 됩니까? 그게 비록 현실적으로는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겁니다. 보십시오. 이 청지기가 친구를 많이 샀는데 자기 돈으로 산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청지기가 집행한 돈은 불의한 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하라는 겁니다. 불의한 재물로 이 청지기처럼 친구를 사라는 겁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나중에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면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한 값진 투자가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청지기는 날마다 주인의 재물을 허비만 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로 열심히 친구를 사귀며 삽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삶으로써 영원한 미래에 대한 좀 더 책임적인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부디 주인의 재물을 주인 뜻에 합당하게 관리하고, 집행하며, 좀 더 성실하게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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