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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Apple-style-span">어느 초가을 큰 포도원을 경영하는 한 부농이 포도수확에 필요한 품군들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 복정역 주변 같은 인력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주인은 거기서 일당 한 데나리온에 여러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합니다. 그후 오전 9시, 12 그리고 오후 3시에도 주인의 일군 고용은 계속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 일과가 끝나기 직전인 오후 5시에도 또 한 차례 고용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제 모든 작업이 끝나고 품삯을 지불할 시간이 됐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여기서도 또 한 번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합니다. 맨 나중 온 품군, 그러니까 불과 한 시간 밖에는 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먼저 부르더니 시간급이 아니라 일당 한 데나리온 씩을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신이 난 사람들은 먼저 온 일군들이었습니다. 불과 한 시간 남짓 일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줬다면 하루 종일 일한 자기들에게는 당연히 그 이상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한 품군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만 지급했습니다. 이 사건이 졸지에 노사문제, 사회문제로 비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인의 이런 처사에 먼저 온 일군들이 당장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lt;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나이다&gt;(마 20:12). 주인이 사회정의의 중요한 원리인 형평의 원칙을 깼다는 것입니다. 수고한 만큼 처우하고 일한 만큼 지급해야 함에도 적게 일한 사람이나 많이 일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함으로써 분배균등의 원칙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 비유는 노사문제를 다룬 한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온 품군들의 이런 쟁의에 대해 주인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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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lt;나는 그대들에게 부당하게 한 것이 없소. 그대들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그대들의 품삯이나 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대들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이 마지막에 온 사람들에게도 주는 것은 내 뜻이오&gt;(마 20:13-14). 그렇다면 포도원 주인의 이런 항변은 과연 정당합니까? 물론 우리는 소유권이야말로 주권과 함께 신성불가침이라며 주인의 입장을 옹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권의 주장이야말로 사회정의의 암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니면 주인이 노동자들에게 기회를 주되 피차 계약을 체결하고 끝까지 그 계약을 이행한 사실을 들어 사회정의를 해친 게 아니라고 변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계약은 이미 자본가와 실업자라는 불합리한 사회계급을 전제로 한 것인 만큼 인권존중은커녕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착취행위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유에서 사회문제의 원칙을 찾고 사회정의의 근거를 밝히려 들면 결국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비유기 때문입니다. 나중 온 일꾼에게 그들이 일한 분량과는 상관없이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것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주인의 일방적인 선행이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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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주인은 분명 &lt;내 뜻이라&gt;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세계이지 노동과 대가, 의무와 권리라는 세상질서와는 같지 않습니다. 받았으니 줘야 하고, 일했으니 삯을 받아야 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되고, 거기서 계급이 생기고, 이해관계에서 긴장이 발생하고, 서로 이기느냐 지느냐, 손해냐 이익이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질서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이 비유의 중요한 메시지는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보장받지 못하며 사는 자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lt;먼저&gt;라는 기득권이 아니라 &lt;모두&gt;가 향유해야 할 삶의 권리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라는 것입니다. 올 추석에는 &lt;나중 된 자&gt;들에 대한 넉넉한 인심도 꼭 잊지 말아야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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