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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8년 3월 30일 푸른교회 주일낮예배<br>본문: 요 20:19-29<br>제목: 도마의 쌍둥이 형제?</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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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우리는 유명한 도마를 잘 압니다. 도마는 믿음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이 아니라 의심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도마는 얼마나 지독한 회의주의자였는지 모릅니다. 25절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눈으로 보는 정도로는 안 되고 직접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안 믿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지독한 실증주의자입니까? 도마 라는 이름은 쌍둥이라는 뜻인데, 성경 어디에도 그의 형제 이름이 없습니다. 혹 도마의 쌍둥이 형제가 바로 나 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지독한 회의주의자요 실증주의자였던 도마의 쌍둥이 형제는 개인적으로는 나이고, 집단적으로는 현대인들이라는 겁니다.</p>
<!-- paragraph:p0004 -->
<p>어떻게 도마가 의심 많은 제자로 낙인이 찍혔으며, 어떤 이유로 우리가 이 시대의 도마의 쌍둥이 형제입니까? 19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날은 주일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안식 후 첫날은 지난 주일 부활절을 가리킵니다. 부활절 저녁 때입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피해 어느 집에 숨어있습니다.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겁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누가복음 24장에도 이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처음에 제자들이 주님이 유령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너희가 어째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느냐며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다고 하셔도, 제자들이 접근하지 못하자, 주님이 여기 먹을 것 없느냐며 그 방안에 있던 생선 한 토막을 드시자, 그제서야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환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중요한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과 첫 해후가 이루어진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인데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못 뵈었던 겁니다. 언제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으로 보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자리에 그는 없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대책을 세우며 힘을 모아야 할 사람인데 그 자리를 비운 겁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합니다. 왜냐면 주님은 성도들이 함께 있을 때 나타나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 각자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 곳에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아니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겠다고 하셨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열심히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함께 있어야 부활하신 주님을 뵙습니다. 함께 있어야 오늘 본문 21절 말씀처럼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소명도 받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축원도 듣습니다. </p>
<!-- paragraph:p0005 -->
<p>첫 자리에 없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했던 도마가 부활하신 후 여드레째 날에 제자들과 함께 있었기에 주님을 뵈었습니다. 만일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다면 주님을 또 뵙지 못했을 겁니다. 진실로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를 원하십니까? 도마처럼 절대 혼자 엉뚱한 곳에 계시지 마십시오. 모이기를 폐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고 교제하는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힘쓸 때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함께 있을 때에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주님을 뵙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다.</p>
<!-- paragraph:p0006 -->
<p>도마는 기본적으로 체험에 대단히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뵌 제자들이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듯한 감격으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고 했는데도, 도마는 내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허리의 창자국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못 믿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대로 오늘날의 불신자를 대변하는 소리입니다. 흔히 ‘하나님을 보여 보라’고 하며 그래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주님, 이번에 우리집 아이 대학만 붙여 주시면 제가 확실히 믿겠습니다. 이번에 한 건 확실히 계약하게 하시면 분명히 믿겠습니다’고 합니다. 어느 분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제 남편은 여전도회 회장 남편이고, 아이가 대학 떨어지면 무슨 낯으로 교회에 가겠습니까. 부디 수능시험 답안지를 한 번 보여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실제로 그날 밤에 답안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시는 없습니다. 흔히 주님의 못자국에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대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져 본 파와 만져 보지 못한 파가 교회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직접 만져 본 파와 만져 보지 못한 파가 싸우면 당연히 못자국에 손을 넣어본 파가 이기지 않겠습니까. </p>
<!-- paragraph:p0007 -->
<p>그러나 주님의 평가는 다릅니다. 주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에 손을 넣어 본 도마가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마의 그 신앙고백을 높이 사시면서 칭찬하셨습니까? 주님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면 체험하고 믿는 자들은 덜 복되다는 뜻입니다. 확실히 주님의 이 말씀에는 도마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이 서려있습니다. 솔직히 보고야 누가 못 믿습니까? 못자국과 창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 믿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보고 믿는 믿음 보다 안 보고 믿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입니다. 저도 아직 못 보았습니다. 왜 제가 못 보았을까요? 굳이 보여주시지 않아도 잘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여 주시기 전에는 절대 안 믿겠습니다고 강경히 버티면, 어떤 식으로든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믿으니까 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도마의 믿음 보다 훨씬 낫습니다. 도마를 너무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보지 않고 믿는 푸른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훨씬 더 좋은 믿음입니다. 절대 주님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겠다는 도마 만이 주님께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정 못 믿겠으면 체험을 통해서라도 믿어봐라, 그래도 안 믿는 것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도마의 믿음 수준이 바로 그 수준입니다. 도마가 특별 대접 받은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보면 노아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믿고 120년간 방주를 지은 노아, 그래서 그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 병고침을 받고, 떡을 먹은 기적의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그 주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몇 명이나 주님을 끝까지 좆았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보지 않고 그저 말씀만으로 믿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말씀이 아니라 직접 만져 봐야 믿겠다며 강력히 주장한 도마의 쌍둥이 형제가 아니라, 체험 보다 말씀만으로 믿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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