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00912m: 알곡(마 13:24-30)

2010년 9월 12일 주일낮예배
본문: 마 13:24-30
제목: 알곡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계속 비가 와서 걱정입니다. 추수를 앞두고 비가 오면 안 되지 않습니까. 농부들의 마음고생이 클 것 같습니다. 주님은 농사꾼은 아니셨습니다. 목수셨으니 장인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농사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본문은 농사에 관한 비유입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 씨들이 싹을 틔워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안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알곡만 자라는 게 아니라 거기에 가라지도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저기에 곡식과 흡사하게 생긴 가라지가 보인 겁니다. 가라지는 논에서 자라는 피와 같고, 보리밭의 깜부기와 같습니다. 잡초입니다. 종들이 깜짝 놀라 주인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하고 당장에 가라지를 다 뽑을까요? 라고 하자, 주님은 가만두라고 합니다. 괜히 가라지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된다고 합니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고,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에 던지겠노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3장 36절 이하에도 계속됩니다. 제자들이 밭의 가라지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절 이하는 이 비유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가라지는 풀무 불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합니다. 풀무 불은 대장간에서 쇠를 녹이는 불입니다. 가라지를 심판하는 불이 대장간의 풀무 불과 다른 것은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고 영원토록 그 풀무 불의 고통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가라지들이 하나님을 향해 영원히 이를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라지들의 최후와는 달리 알곡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렇게 됩니다. 43절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러니까 알곡과 가라지들의 최후 운명이 첨예하게 대비된다는 겁니다. 가라지들은 풀무 불 안에서 죽지도 않고 최악의 고통을 느끼며 하나님을 향해 이를 갈고 있고, 알곡들 곧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난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왜 밭에는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는 것일까? 라는 겁니다. 왜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세상은 너무도 부조리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인데 모순과 아픔이 너무 많습니다. 틀림없이 고르고 뽑아서 알곡만 뽑았는데 왜 주님의 밭에 가라지가 생기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말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신가?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정말 하나님은 공명정대하신가? 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주관하는 세상에 악이 범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셨을리는 없는데 어떻게 저토록 파괴적의고 악의적인 게 득세하고 불의가 세상을 주관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시지 않으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완전하고 완벽하며 선했는데, 왜 이렇게 세상에 가라지들이 돋았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알곡만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주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고 계십니까? 25절입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7절 이하도 마찬가지입니다.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그런데 39절을 보니 이 원수들이 바로 마귀, 사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지를 심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악을 창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사탄이 가라지를 뿌린 겁니다. 마귀가 바로 주범입니다. 알곡만 뿌린 밭에 마귀가 몰래 와서 자기의 아들들, 원수의 종자들인 가라지를 뿌려서 이 세상과 교회 안에 모순과 갈등과 죄와 긴장과 대결과 부조리와 아픔을 조장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알곡을 심으셨듯이 마귀도 이 세상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왜 가라지 같은 못된 독초가 나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알곡들을 해치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사탄의 공작입니다. 

그러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처방을 보겠습니다. 종들은 가라지를 당장 뽑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29-30절을 보니 가만두라고 하며,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수 때까지 입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날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부조리나 악은 이 세상 종말까지 갑니다. 이게 주님의 뜻입니다. 종들에게 주님이 그렇게 명하셨습니다. 알곡과 함께 세상 끝까지 자라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장에 낫을 대거나 뿌리째 뽑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용납하라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주님은 늘 이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내 주먹을 믿으라며 망발을 일삼는 이를 일단은 놔두십니다. 알곡과 가라지,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십니다. 우리가 견디기 힘든 게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악당들이 더 잘 삽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저 가라지들은 어차피 나중에 풀무 불에 들어갈 사람이기에 잠시 이 세상에 살동안만큼은 호의호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라지를 주님이 용납하시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29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주인이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가만두라고 하신 것은 가라지를 위한 배려가 아닙니다. 다 알곡을 위해서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내는 게 알곡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칫하면 알곡도 다친다는 겁니다. 가라지는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그래서 가라지 한 포기 뽑다가 알곡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알곡들을 위해 추수 때까지만 그 심판을 유보하시겠다는 겁니다. 시한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악이 득세하고 가라지들이 승승장구한다해도 그런 현실을 속상해 하거나 억울해 할 것 없습니다. 가라지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인 세상 끝날까지는 가라지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긴장 속에서, 숱한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아픔을 겪으며 함께 사는 도리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나 사회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낙관주의는 이롭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마귀가 뿌린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또 세상 모순에 너무 정말하거나 현실 교회에 너무 좌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가라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상태가 세상 끝날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좌절하지 마십시오. 다 알곡을 위해 추수 때까지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견디고 참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귀의 장난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늘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합니다. 25절을 보면 원수가 사람들이 잘 때 몰래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 마귀가 우리 사회에 악을 뿌리고, 독을 뿌립니다. 성도들이 잘 때 마귀가 와서 교회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가족들이 잘 때 마귀가 와서 가정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깨어있어야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졸거나 자다가는 그야말로 무방비로 당합니다. 마귀는 야행성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잘 때 활동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에 취해 있을 때 몰래 와서 많은 영혼을 도적질합니다. 마귀는 도적보다 더 교활하기에 정말 깨어있지 않으면 내 영혼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미혹에 빠지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깨어있으면 괜찮습니다. 성령충만하면 괜찮습니다.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성령이 무서워 나를 유린하지 못합니다. 잘 때가 문제입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가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우리가 잘 때 가라지를 뿌리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 사회에 교회에 가정에 몰래와서 가라지를 뿌립니까? 어떻게든 알곡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13장 41절입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를 넘어지게 합니다. 마귀는 절대 알곡을 가라지 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넘어지게는 할 수 있습니다. 실족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치명적인 해를 입게 합니다. 가라지 얘기가 나오면 어떤 분들은 자기가 가라지가 아닐까 불안해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지금은 가라지가 아니나 마귀에게 미혹을 당해 가라지가 되면 어떠나 불안해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알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곡이고, 가라지는 결국 가라지일 뿐입니다. 다만 알곡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넘어지고 실패하며 좌절할 수는 있습니다. 모진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마귀가 알곡인 나를 가라지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마귀는 우리 알곡들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몰래 가라지를 뿌리는 겁니다. 마귀의 장난에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내가 알곡이라는 사실 하나로 안도해서는 안 됩니다. 늘 경계하며 자신을 잘 관리하며 단속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에게 아픔을 겪지 않습니다. 부디 더는 마귀로 인해 그 어떤 모순도 갈등도 아픔도 부조리도 없는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