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나의 힘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시편 59편)

2010. 9. 9.

나의 힘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

시 59:1-17

 

시편은 우리 영혼의 맨 밑바닥까지를 다 드러냅니다. 우리 영혼의 섬세한 결들을 낱낱이 분해하고 그 미친 듯한 기복을 여과 없이 다 까발립니다. 그래서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했습니다. 시편이 영혼의 해부학임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시인이 빠졌던 그 깊은 웅덩이에 함께 투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프고 쓴 부분들도 같이 묵상해야 비로소 그 쓴맛에 담겨 있는 오묘한 뒤끝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시편이 주는 쾌감

시편을 묵상하며 느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수들에 대한 통쾌한 저주입니다. 이것을 <쾌감>이라 하는 이유는 차마 우리가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시편이 속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대개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걸려 원색적인 분노와 저주를 쉽게 뱉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의 원수들을 향한 거침없는 저주에 당혹해하면서도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5절).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13절). 이런 속마음을 하나님 앞이 아니면 누구에게 쏟아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단지 우리의 중심을 바치면서 적나라한 소원을 아뢸 뿐 응답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몫입니다. 걱정마시고 모든 것을 고하시며 하소연 하십시오.

 

입의 악과 입술의 칼

이 시에는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사울이 보낸 저격수들이 다윗의 집을 포위하고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다윗을 두렵게 한 것은 그들의 활이나 창이 아니라 입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7절). 그들의 입은 마치 예리한 칼과 같아서 아마도 <다윗은 반란자다!> 혹은 <다윗이 왕의 자리를 넘본다!>는 식으로 그를 매도하고 악선전했던 것 같습니다. 욥의 경우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세 친구들의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가장 치명적인 흉기가 바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언론이 그렇고, 인터넷의 각종 댓글들이 그렇습니다. 국회가 그렇고 정부가 그렇습니다. 다 말 때문에 피흘리고 말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심지어 말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혀가 얼마나 무섭고 입이 얼마나 예리한 칼인가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실감하며 사는 요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

원수들은 강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시인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더욱 강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9절).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17절).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야말로 백전백승입니다. 주님보다 더 강한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요 나의 <피난처>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을 이기며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