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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 paragraph:p0002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www.youtube.com/embed/T6BlzVMT7dw" title="미디어 원본"></a></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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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30512m</p>
<!-- paragraph:p0004 -->
<p class="p1">엡 6: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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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첫 계명</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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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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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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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9 -->
<p class="p1">2절 하반절입니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하나님의 계명은 다 중요합니다. 첫 계명은 더욱 중요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첫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계명 중 첫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늘에서 떨어진 겁니다. 하나님이 두 개의 돌판에 직접 각인하셔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에 관한 계명 중 첫 계명은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것은 인륜의 첫 계명입니다. 2절 하반절의 첫 계명은 두 번째 돌판 첫 계명을 가리키는데, 제5계명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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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1 -->
<p class="p1">그런데 이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무슨 약속입니까? 3절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구약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부모 공경 계명에는 이 약속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다른 계명은 외마디 명령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판 첫 계명인 제5계명에는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그 약속은 네가 땅에서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무병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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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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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만사형통과 무병장수는 인간사의 보편적 소원입니다. 이것이 효와 맞물려 있습니다.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뜻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고 가족 모두가 무병장수하기를 원하신다면,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효를 다 하십시오. 이것이 비결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유교도 효를 강조합니다. 특히 부모나 조상의 제사를 잘 모셔야 자식들이 화를 당하지 않고 유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잘 모시지 않던 자식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사는 악착같이 지냅니다. 제 잘 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들 대행업체에 맡기는 한이 있어도 제사는 지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닙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를 다하라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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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불효자는 다 불행했습니다. 그 종말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대표적인 불효자들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입니다. 요즘 같으면 목회자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만고의 불효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전쟁에 나가 블레셋 군대에 패합니다. 혹 전쟁에서 이길까 싶어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그 법궤마저 빼앗깁니다. 결국 그 둘은 전사하고,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놀라 자빠져 죽습니다. 거기서 대가 끊깁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패륜아 압살롬 아시지요? 미남이었습니다. 금발에 키도 컸습니다. 요즘 같으면 모델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사실 다윗도 그 아들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노새를 타고 상수리나무 아래를 달리다 자기의 자랑 금발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립니다. 그 뒤를 쫓던 진압군 대장 요압이 압살롬의 심장에 창을 꽂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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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7 -->
<p class="p1">그런데 효자들은 성경말씀 그대로 장수합니다. 만사형통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을 사서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지만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110세까지 장수하며 온갖 복을 누립니다. 그런데 창세기 39장에 보면 재밌는 구절이 후렴구처럼 반복됩니다. 노예로 팔려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데도, 옥살이를 하는데도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의 범사가 형통하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범사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형통케 하십니다.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있더라도 형통합니다. 그래서 결국 극적으로 요셉의 생애가 반전됩니다. 이방인 노예에서 하루아침에 애굽의 제2인지가 됩니다. 절세의 효부 룻도 보십시오. 남편까지 죽었는데도 끝내 시모를 향한 효를 다합니다.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만리타국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와서 시모를 봉양하다 보아스를 만나 재혼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립니다. 룻보다 더 영예로운 여인이 없습니다.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전무후무한 지혜와 영화의 화신 솔로몬도 효자였습니다. 솔로몬은 이복형제 압살롬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 1절 이하를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 유언은 딱 한 가지인데, 여호와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잘 지키라거나 영토를 크게 넓혀 강성대국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살면 무엇을 하든 형통할 것이라 했습니다. 솔로몬이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한 것도 사실은 자기의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의 절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 뜻에 복종해서 이룬 것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다 준다고 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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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의 효 사상은 철저하다 못해 과격합니다. <span>신명기 21장 18절 이하를 보면,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잠언 30장 17절입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성경이 효에 대해 왜 이리도 극단하게 가르칩니까? 부모 공경의 연장이 하나님 공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고 성경이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효 사상은 동양의 효 사상보다 엄격합니다. 주님도 십자가 앞에서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주님이 효의 모범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기의 원함을 꺾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겁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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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경에는 말세 징후에 대한 목록이 나옵니다. 어디에서나 빠지지 않는 게 부모 거역입니다. 로마서 1장이니 디모데후서 3장 등등에 나옵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역한다는 것입니다. 불효도 중요한 말세적 현상입니다.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삽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기독교에서 효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효는 사람의 교훈인데, 기독교의 효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에 각인해서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제사 잘 지낼 생각하지 마시고 살아계실 때 효를 다하십시다. 효를 다하셔서 부모님도 기뻐하시고, 여러분과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빕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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