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60만분의 2(민 14:26-30)

2010년 9월 5일 주일낮예배
본문: 민 14:26-30
제목: 60만분의 2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60만분의 2,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수능에 응시한 학생이 60만이고, 그 중 만점자가 2명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바로 이 얘깁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얘깁니다. 출애굽 할 때 20세 이상의 남성 숫자가 60만이었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출애굽 1세대라고 합니다. 출애굽 당시 20세 이하를 출애굽 2세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출애굽 3세대라고 합니다. 출애굽 1세대 60만 가운데서 몇 명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단 2명입니다. 그래서 60만분의 2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다 2, 3세대였고, 1세대였던 모세까지도 못 들어갔습니다. 왜 모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까지도 하나님께 벌 받아 죽었습니다. 모세는 자연사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60만 중 2명만 살았습니까? 이 2명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12 정탐꾼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차출하여 정탐꾼 팀을 구성합니다. 가나안 현지 사정과 원주민의 동태를 정탐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다 살아서 돌아와서 그 결과를 보고하는데, 12명의 정탐꾼들의 보고가 첨예하게 둘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한 마디로 정탐한 결과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13장 28절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31-33절입니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절망적인 보고였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민수기 14장 1절 이하입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이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회중 앞에 나섭니다. 13장 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14장 7절이하입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어쩌면 이렇게 보고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까? 한 쪽은 절대 우리가 가나안을 치지 못한다고 하고, 다른 쪽은 아니다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쪽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하는데, 다른 쪽은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합니다. 한 쪽은 그들은 장대하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하고, 다른 쪽은 그들이 우리의 먹이요 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엇갈리는 보고를 하게 된 겁니까?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정탐꾼은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들이었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이었다고 합니다. 각 지파의 지도자급이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이나 판단, 행동이 전혀 신앙적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게 분열증입니다. 겉은 신자이나 속은 아닙니다. 이게 표리부동한 모순입니다. 부정적으로 보고한 사람들의 언어에는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어 보십시오. 14장 8-9절입니다. “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구구절절 여호와 신앙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인간적 만용이 아니라 믿음의 용기에서 온 보고입니다. 14장 11절을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돌로 치려합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탄식하십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며,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게 하나님 불신에서 온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고, 바울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하고 비관하며 회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자신을 메뚜기라고 하고, 적들을 거인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당장에 올라가 그 땅을 취하자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온 담력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념입니다. 내 인생, 존재, 운명에 하나님을 플러스하는 게 믿음입니다. 나 혼자는 안 됩니다. 나보다 약한 적은 없습니다. 나 혼자서 싸우면 다 집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 하나님이 더해지면 나는 무적이 됩니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더해져야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이 더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비관적인 보고를 한 겁니다. 거기에다 백성들이 울며불며 난리를 친 겁니다. 갈렙은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고, 따라서 우리가 능히 가나안을 이기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십시오. 믿음으로 가나안을 대망하십시오. 누구도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인생에 더 하십시오.

정탐꾼 사이에는 비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미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미래보다는 과거에 붙잡힙니다. 미래를 바라봐야 발전이 있고 부흥이 있는데, 뜻밖에도 미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과거에 발목을 잡혀 삽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희망이 내일이 발전이 없습니다. 진보라는 게 없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애굽의 옛 생활을 그렇게도 잊지 못했습니다. 14장 3절 하반절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가나안 문턱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이어지는 4절입니다.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아예 돌아가자.”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그들의 구호였고, 입에 달고 살던 노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가나안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광야에 뼈를 묻어야 했다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얘깁니까.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쟁기잡고 뒤를 돌아보니 반듯하게 밭을 갈지 못합니다. 바울은 과거의 이력을 배설물처럼 내버린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서적 실존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부단히 달려가는 존재가 신자의 실존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도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앞서 가셨습니다. 앞서가신 주님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십시오. 하나님이 앞에 계시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한 얘기, 유치원 졸업할 때 수석한 얘기를 합니다. 구원 받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구원 받은 감격만 팔아먹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애굽을 탈출했으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야 하는데, 아직도 애굽 문턱에서 공기놀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20년 30년 믿으면 뭐합니까?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 광야에서 죽은 겁니다. 

10명의 정탐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문턱에 와서까지 과거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래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진격하자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시렵니까? 우리 교회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향후 우리 교회의 진로와 운명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결단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이스라엘 보십시오. 과거를 고집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가나안을 사양한 댓가가 얼마나 엄중하고 혹독했습니까? 29절 이하입니다.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14장 35절 이하입니다.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우리는 반드시 여호수아와 갈렙의 후예들이 됩시다. 신앙적이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불신앙적이고 현실안주적이며 과거회귀적인 사람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진정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된 주인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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