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통치자들아!(시편 58편)

2010. 9. 4.

통치자들아!

시 58:1-11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1절). 통치자들, 재판관들의 불의에 대해 신랄하게 고발하고 성토하는 시입니다. 세상의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공평하게 판정하므로 공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들이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가 하면 도리어 악을 모의하거나 조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주는도다>(2절).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다는 뜻입니다. 법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이 가려진 채 저울을 들고 서 있습니다. 법이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모든 이에 대해 공평정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의 대행자

유다 왕 여호사밧은 재판관을 세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여호와께서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대하 19:6-7).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구한 것도 장수나 부귀나 권세가 아니라 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만큼 고대사회에서의 재판은 왕의 주된 임무요 사회정의의 보루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

불의에 대한 시인의 고발은 늘 그렇듯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위세에 곧 묻히고 맙니다. 따라서 언로가 막힌 시인으로서는 그 답답함을 오직 하나님께만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인의 입에서 악인들에 대한 가시 돋친 말들이 막 쏟아집니다. 3절에서 10절에 이르는 시인의 저주는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들은 태생부터가 잘못 됐다(3절)고 합니다. 그들은 독을 품은 독사 같은 자(4절)들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악은 통제되지 않은 악으로 아무나, 심지어는 자기의 동료나 스승마저도 물어 죽이는 악이라고 합니다.

 

악인들에 대한 탄원

원수를 멸망케 해 달라는 시인의 기도는 몹시 집요하고 철저합니다. 그들의 <이빨을 꺾어 주시고, 어금니를 부수어 달라>(6절), <그들이 급하게 흐르는 물처럼 사라지게 하시고, 부러진 화살 같이>(7절) 쓸모없는 인생이 되게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심지어는 뜨거운 태양 아래 잔뜩 움츠린 달팽이 같게 해 달라고도 하는데(8절) 그 묘사가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악인들에 대한 저주가 극심할 수록 시인이 겪은 고통과 분노의 깊이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인들에 대한 이 저주에서 정의와 공평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목마름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는 불의한 통치자와 재판관에 대한 고발을 통해 공의의 가치를 한껏 드높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렇게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자들을 통해 실현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며, 성경이 말씀하는 <애통하는 자> 입니다. 우리는 늘 이 세상의 재판관보다 영원한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